2024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준결승전에서 진풍경이 펼쳐졌다. 초록색 코트 위 네트를 가운데에 두고 태극마크를 단 네 명의 선수들이 둘씩 짝지어 나란히 마주 섰다. “대~한민국” 태극기를 든 관중들이 이따금 내뱉는 응원 구호는 코트 한쪽만을 향한 것은 아니라는 듯 금세 허공 위로 흩어졌다.
세계랭킹 8위 김원호(25·삼성생명)-정나은(24·화순군청)은 2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라샤펠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배드민턴 혼합복식 준결승전에서 세계 2위 서승재(27·삼성생명)-채유정(29·인천국제공항) 조를 2대 1(21-16, 20-22, 23-21)로 꺾고 은메달을 확보했다.
‘선후배 맞대결’에서 결승 티켓을 따낸 건 후배 김원호-정나은 조였다. 이날 경기 전까지 5전 전패로 한 번도 꺾지 못했던 선배들을 넘어선 이들은 생애 첫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확보했다. 아쉽게 결승 문턱에서 좌절한 서승재-채유정 조는 이제 동메달 결정전으로 향한다.
한국은 2008 베이징올림픽 이용대-이효정의 혼합복식 금메달 이후 16년 만의 금맥 캐기에 나선다. 한국 배드민턴은 2012 런던올림픽, 2016 리우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까지 3개 대회 연속 동메달 1개에 그쳤다.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인 만큼 선후배 간 물러설 수 없는 맞대결이 펼쳐졌다. 특히 2게임에 접어들고 나서는 시종 접전 양상이었다. 범실을 쏟아내며 1게임을 내준 서승재-채유정 조는 듀스 접전 끝에 절치부심해 2게임을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마지막 게임에서도 박빙 승부는 계속됐다. 서승재-채유정 조가 인터벌 점수에 먼저 도달한 뒤 기세가 기우는 듯했으나 후배들 역시 만만찮은 패기로 맞섰다. 이 과정에서 김원호는 메디컬 타임을 요청하고 구토까지 한 뒤 다시 코트에 들어섰다.
동점과 역전, 재역전을 반복하는 시소게임 끝에 결국 21-21 듀스 상황을 맞았다. 2점을 먼저 낸 쪽은 후배들이었다. 라켓을 바꾸며 재정비를 한 김원호-정나은 조는 채유정의 범실과 김원호의 득점을 묶어 승리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네 선수는 네트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얼싸안았다. 한국 선수들이 펼친 명승부에 각국의 관중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경기 후 숨을 헐떡이며 믹스트존에 들어선 선수들은 이긴 쪽도 진 쪽도, 밝게 웃지 못했다. 승부의 여운이 아직 다 가시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미 시선은 이튿날 펼쳐질 메달 결정전을 향한 뒤였다.
김원호는 “누가 이기든 올라가면 금메달을 따야 한다”며 “저희가 이겼으니 더 책임감을 갖겠다. 마지막 결승전은 어떻게든 이기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승재는 “경기 중반에 다량 실점했던 순간이 많이 아쉽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꼭 메달을 걸겠다”고 말했다.
파리=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