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이라 애 안 낳는다?… NYT “사회구조 문제”

입력 2024-08-02 00:02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1일(현지시간) ‘많은 미국인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뉴욕타임스 캡처

미국 저출생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인 경제·사회적 상황이 빚어낸 결과라고 뉴욕타임스(NYT)가 분석했다. NYT는 지난 31일(현지시간) ‘많은 미국인이 왜 아이를 낳지 않나’라는 제목의 기사로 출산율 감소 원인을 들여다 봤다.

미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1.62명이다. ‘압도적 꼴지’인 한국(0.72명)에 비하면 배 이상 높지만 미국으로서는 사상 최저 출산율이다.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 마지노선 2.1명에 크게 못 미친다는 점을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미국 출산율 감소세는 경제 상황이 개선된 뒤에도 쉽게 반등하지 않았다.

美보수 “저출산은 ‘도덕적 몰락’”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인 J D 밴스 상원의원이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래드포드대학교에서 유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몇 년간 미국 보수 진영에서는 저출산이 젊은 세대의 ‘도덕적 몰락’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왔다. 젊은이들이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보다는 개인적 욕구를 앞세워 아이를 낳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공화당 부통령 후보 J D 밴스(39)는 2021년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향해 “자식 없어 비참한 ‘캣 레이디들’이 국가도 비참하게 만들려 한다”고 발언해 논란을 불렀다. ‘캣 레이디’는 아이를 낳지 않고 고양이를 키우는 중년 독신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이다.

과거 발언이 논란이 되자 밴스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자녀를 갖는 발상을 회의적으로 여기거나 심지어 혐오하게 됐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폭스 뉴스에 출연한 애슐리 세인트 클리어(30). FOX NEWS 캡처

미국의 청년 보수 논객 애슐리 세인트 클리어(31)는 지난해 폭스뉴스에 출연해 결혼하지 않는 청년들을 향해 “그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비욘세 콘서트에 가는 쾌락만을 추구한다. 가족을 이루는 성취 대신 자기만족에 취해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 “저출산은 구조적 문제”

NYT는 전문가들의 연구와 견해를 인용해 “저출산의 근본 원인은 젊은 세대의 이기심이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저출산을 연구하는 사회학자 매리 브린튼은 “미국인 청년들에겐 가족을 향한 헌신이 부족하지 않다”며 “저출산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정책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저출산의 원인을 개인과 세대의 특성으로 좁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보육료와 대출금리 인상 등 경제적 요인은 출산과 양육을 미루거나 단념하게 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인구학자 카렌 벤저민 구조 박사는 “아이를 갖기 전 집을 사고 학자금 대출을 갚는 등 경제적 이정표에 먼저 도달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며 “그 후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시기(1946~1964년) 평균 20세였던 미국 여성의 첫 출산 연령은 2022년 27세로 상승했다.

아이 안 낳는 이유, ‘미래에 대한 비관’

자녀인 미래세대의 불투명한 삶 또한 저출산에 영향을 준다.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가 아니라면 차라리 출산을 포기하는 선택지가 낫다고 여긴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사회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서는 미래세대의 앞날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NYT는 전했다.

구조 박사는 “기후위기, 총기사고, 전 세계적 감염병 등 여러 요인이 미국 젊은이들로 하여금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며 “경제 및 복지 시스템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현상이 여러 선진국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하다”고 해설했다.

오하이오주립대 사라 헤이포드 인구연구소장은 “이제 미국에서 출산은 ‘선택’이 됐다”며 “자녀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없다면 부모가 되기를 꺼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다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