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 남자 사브르 단체전 3연패를 이룬 한국이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뤘다. 박상원(23·대전광역시청)과 도경동(24·국군체육부대)은 생애 첫 올림픽 단체전 무대를 성공리에 마무리하며 ‘뉴 어펜저스 시대’의 새로운 서막을 알렸다.
박상원과 도경동은 1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단체전 결승에서 헝가리(3위)를 45대 41로 꺾고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결승 중반 베테랑 오상욱(27·대전광역시청)과 구본길(35·국민체육진흥공단)이 다소 흔들렸지만 영건들의 패기를 보여주며 승리의 선봉에 섰다.
결승전에선 예비 선수 도경동이 팀의 ‘비밀 병기’로 활약했다. 결승에 오르기 전까지 피스트를 밟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하다”고 말했던 그는 7라운드 구본길의 교체 선수로 나서 무려 5연속 득점을 올렸다. 직전 라운드까지 1점 차로 쫓기던 차에 기세를 잡는 1등 공신으로 역할 했다.
도경동은 경기 후 “질 자신이 없었다”며 “들어가기 전에 형들한테 ‘이기고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이 지켜져서 다행인 것 같다”고 말했다. 대표팀에서 은퇴한 ‘원조 어펜저스’ 선배들도 언급했다. 그는 “(김)준호, (김)정환 형들이 (시합에) 나가게 되면 ‘네가 어떤 놈인지 보여주라’고 했는데 그걸 이루게 돼 정말 기분이 좋다”고 전했다.
지난해 4월 입대한 도경동은 이날 금메달을 따내며 조기 전역 혜택을 받기도 했다. 제대는 올해 10월로 군복을 벗기까지 아직 2개월가량이 남아 있었다. 그는 ‘군 복무 기간을 다 채울 생각이 없냐’는 농담에 “펜싱을 더 열심히 하는 거로 하겠다”라고 웃어넘겼다.
박상원은 준결승전부터 단체전 첫 순서를 맡아 대표팀의 출발을 책임졌다. 이번 대회 개인전 32강에서 국제펜싱연맹 랭킹 6위의 콜린 히스콕(미국)을 잡는 이변을 썼던 그는 특유의 민첩한 움직임으로 상대 선수의 빈틈을 정확히 공략했다.
8라운드 한때 연속 득점에 성공했을 때는 커다란 포효를 내질러 이목을 끌기도 했다. 박상원은 “너무 이기고 싶으니까 간절하면 (감정이) 막 올라오더라”며 “그렇게 안 하면 기세에서 질 것 같았다. 일부러 상대편 기를 죽이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시합 때의 기세와는 달리 경기장 바깥에선 반전 매력을 뽐냈다. 경기 후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마이크 앞에 선 박상원은 차분한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하더니 질문이 이어지는 내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목에 걸린 메달을 만지작거렸다.
대표팀 맏형 구본길이 올림픽 은퇴를 선언한 상황에서 두 영건들의 어깨가 무겁다. 2012 런던올림픽 때 사상 첫 펜싱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는 걸 보며 선수의 꿈을 키워 온 ‘런던 키즈’이지만 이제는 ‘세대교체’라는 중책을 짊어졌다.
박상원은 “사실 (구)본길, (오)상욱 형들을 보면서 펜싱을 해와서 지금도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신기하다”며 “형들의 길을 따라서 더 열심히 하겠다. 다음 메이저 대회도 많이 준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대표팀 기둥 오상욱과 구본길도 막내들을 치켜세웠다. 오상욱은 “이번 멤버들은 조금 더 파워풀하고 좀 더 패기가 있다. 쓰나미 같은 힘이 있는 것 같다”며 “지금은 ‘뉴 어펜저스’ 시대”라고 규정했다. 구본길 역시 “‘뉴 어펜저스’라는 압박감에 사실 후배들이 많이 힘들어했는데 잘 견뎌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파리=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