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못 받아도 물건 보내라니”… 위기의 티메프 셀러들

입력 2024-08-01 00:03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가 이어진 7월 26일 피해자들이 서울 강남구 티몬 신사옥에서 환불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티몬·위메프(티메프)에서 물건을 팔고 대금을 받지 못한 일부 피해 셀러(판매자)가 범법자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정산 지연 가능성이 커지자 고객들에게 상품을 보내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는데,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행위에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3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보고된 ‘위메프·티몬 미정산 사태 관련 보고’ 문서에 따르면 공정위와 금융감독원은 합동점검반을 꾸리고 티메프 사태와 관련해 전자상거래법·전자금융법 위반 사항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

문제는 티메프에 입점한 셀러들이다. 현행 전자상거래법은 통신판매중개업자(티메프)가 아닌 통신판매업자(셀러)에게 재화(상품) 공급 의무를 부과한다. 즉 원칙적으로 따지면 티메프로부터 대금을 받든 못 받든 셀러들은 이미 주문한 고객들에게 약속한 상품을 발송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일부 셀러는 “티메프에서 대금을 받지 못했다”며 일방적으로 소비자 주문을 취소하고 상품을 공급하지 않았다. 소비자가 이미 지불한 금액은 티메프로부터 알아서 받아내라는 식의 대응으로 비쳐졌다. 일각에서는 “셀러들이 티메프와 해결해야 할 대금 정산에 따른 손실을 소비자에게 전가했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노랑풍선, 하나투어 등 중·대형 업체도 이런 행보에 동참하며 여론이 악화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셀러들이) 대금을 받지 못했는데도 물건을 보내줘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추후에 고려해봐야 할 문제”라면서도 “일단 전자상거래법은 통신판매업자에게 그런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한다면 티메프와 함께 일부 셀러도 함께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우려가 있는 셈이다.

다만 티메프 사태에 휘말린 셀러 대부분이 중소기업·소상공인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 같은 법 집행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 역시 “법에는 그렇게 나와 있다”면서도 “(정부가) 일률적으로 모든 입점 업체들을 범법자로 몰 수는 없다”고 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온라인쇼핑몰 등 상품판매중개업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취지의 법·제도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자문위원인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정산을 받지 못하면서도 상품을 보내온 판매자들에게 마지막까지 재화 공급 책임을 묻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다”며 “상품판매중개업자의 권력이 커진 만큼 이들에게도 더 큰 책임을 부과하는 식으로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은 티몬 운영 과정에서 전자금융법상 선불전자지급수단인 ‘티몬캐시’와 관련해 문제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티몬캐시는 티몬에서 현금처럼 사용 가능한 일종의 쇼핑몰 포인트다.

앞서 티몬은 이번 사태가 터지기 직전 티몬캐시를 액면가의 90%에 판매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업계에서는 최대 수백억원어치가 팔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티몬캐시 판매금이 티메프 자금 돌려막기에 쓰인 게 아니냐는 의심이 일고 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