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2법’ 폐지 검토에… “전세 시장 불안만 키울 수도“

입력 2024-08-01 06:02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지난 31일부로 시행 만 4년을 넘었다. 최근 서울을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의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실이 다시 “폐지 검토” 방침을 밝히며 존폐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폐지를 위해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를 넘어야 한다. 전세 가격 상승기에 시장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높다. 전문가들은 “임대차 2법의 폐지든 유지든,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여당은 임대차 2법의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현재 전월세 임차인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거주 기간을 최대 4년(기존 2년에 2년 추가 연장)까지 늘릴 수 있다. 연장 시에도 임대료 상승률은 최대 5%로 제한된다. 이를 원점으로 되돌린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개편 방향이다. 정부 관계자는 1일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없애고 2020년 7월 이전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임대차 2법 폐지 입장은 최근 서울 전셋값 상승과 맞물려 찬반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전세 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4년 치 전셋값을 한꺼번에 받으려는 수요가 가격 상승을 더 부추기고 있다는 입장이다. 계약 주기를 다시 2년으로 줄이면 시장 상황에 따라 바로 가격이 반영돼 수급 안정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부 시각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임대차 2법 폐지가 전월세 시장의 또다른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금처럼 서울 등의 전세 가격이 들썩이는 상황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불안을 키워 가격 변동성만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급 물량이 부족해 전세 상승 우려가 큰 상황에서 왜 폐지를 해야 하는지 명분이 부족하다”며 “세입자 입장에선 2년 더 계약을 연장하고 5%만 증액하는 것이 유리한데, 이걸 폐지하겠다는 신호를 주면 시장 불안만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지난달 둘째 주(15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지수는 89.6으로, 2023년 5월(86.5) 이후 61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임대차 2법을 유지하되 부작용은 일부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에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나 실거주 여부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소송으로 번지는 사태를 줄이는 식의 보완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임대차 2법의 기본 골격은 유지하는 게 맞는다”면서도 “법이 너무 급하게 만들어지면서 임대인과 임차인의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부작용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손 볼 필요는 있다”고 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도 “폐지보다 개정이 필요하다”며 “중고등학교 학제에 맞춰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2+1년’로 바꾸거나, 전월세 인상폭을 일정 금액까지만 묶고 나머지는 시장 자율에 맡기는 방식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서울 강남 등의 이른바 ‘고가 전세’에 대해선 임대차 2법 적용을 제외하는 등의 추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 늦기 전에 임대차 2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2법이 임차인의 안정성을 강화한 측면도 있지만, 가격 자율성 등 시장 기능을 훼손하는 부작용이 더 컸다”며 “부동산 폭등 장세 같은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시장 기능을 다시 회복하는 방향이 맞는다”고 했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부의 임대차 2법 폐지안은 거대 야당의 반대를 넘어야 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인 맹성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자신의 SNS에 “임대차 2법 폐지가 국민의 의사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국민의 삶과 관련된 정책일수록 예측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향후 정부의 개편안 발표와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필수라고 제언한다. 고 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임대차는 이해관계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며 “법을 고치더라도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개선점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교수도 “(임대차 2법의) 폐지든 유지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끌어 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세종=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