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의 아버지 이회영, ‘캠벨하우스’에 깃들다

입력 2024-07-29 13:40
서울 종로 양의문교회 옥상에서 내려다 본 '이회영 기념관' 전경. 흰색 원 안에 보이는 2개의 석조 건물 중 오른쪽으로 기념관이 이전했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사직로의 좁은 골목을 걷다 ‘이회영 기념관’이라는 간판이 붙은 오래된 집을 만났다.

긴 세월 ‘캠벨 하우스’로 불렸던 이곳에는 20세기 초 화강암으로 지은 2층 높이의 양옥 두 채가 있다. 이 집은 서울시가 2019년 우수건축자산으로 지정했다.

미국 남감리회 파송을 받은 조세핀 캠벨(1853∼1920) 선교사가 이 집에서 살았다. 1897년 우리나라에 온 그는 배화여대 전신인 배화학당을 세워 근대 여성 교육의 문을 열었다.

독립을 꿈꾸며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던 우당(友堂) 이회영(1867~1932)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이회영 기념관’이 최근 서울 중구 예장동에서 이 곳으로 이전했다. 현재 화폐 가치로 6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선뜻 내놓았던 우당의 삶, 그리고 여성을 깨웠던 캠벨 선교사의 흔적이 한데 어우러진 셈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인 우당은 미국 북감리회 소속 메리 스크랜튼 선교사가 세운 상동교회 교인이기도 했다. 그의 기념관이 캠벨 선교사의 집에 깃들면서 감리교인과 감리교 선교사가 한 데 모였다는 의미까지 더해졌다.

우당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기념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우당의 흉상이 서 있었다.

마당으로 발길을 옮겨 도심 쪽을 바라보자 북악산이 서울을 감싸고 있는 풍경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석조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우당과 형제들의 이야기부터 그의 부인인 독립운동가 이은숙(1889∼1979)이 쓴 ‘서간도 시종기’, 여러 점의 수묵화가 차례대로 펄쳐졌다.

독립군이 사용했던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과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용했던 권총과 같은 종류인 브라우닝 권총도 전시돼 있다.

독립군이 사용했던 러시아제 모신나강 소총과 안중근이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할 때 사용했던 권총과 같은 종류인 브라우닝 권총 등이 전시돼 있다.

우당 이회영은 독립운동사에 굵은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조판서 이유승의 넷째로 태어난 그의 집안은 백사 이항복을 비롯해 여섯 명의 정승과 두 명의 대제학을 배출한 명문가다.

상동교회 상동청년학원 학감으로 일하던 우당은 1907년 4월 비밀결사 단체인 ‘신민회’를 발족했고 두 달 뒤 ‘헤이그 특사’ 파견을 주도했다. 1910년 12월 일가 전체와 만주로 망명한 우당은 형제들과 함께 이듬해 5월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이런 공로로 우당과 초대 부통령을 지낸 동생 이시영 등 여섯 명의 형제들은 모두 건국훈장을 받았다. 2018년에는 부인 이은숙까지 건국훈장에 추서됐다.

이종걸 '이회영 기념관' 이사장이 지난 26일 서울 종로 기념관에서 우당의 수묵화를 가리키며 그의 삶을 설명하고 있다.

이종걸 이회영 기념관 이사장은 “감리교인이던 우당의 기념관이 감리교 선교사이던 캠벨의 집으로 온 건 우연히 이뤄진 일이 아니라 뭔가 역사적인 이끌림의 결과라고 생각한다”면서 “독립을 위해서, 여성 교육·선교를 위해 헌신했던 삶이 한 공간에서 만나 희망의 미래를 그려 나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 이사장은 우당의 손자다.

그는 “강하지만 넓고 포용적이셨던 할아버지의 삶이 기독교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많은 분이 기념관을 방문해 할아버지께서 남긴 정신적 유산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지난달 17일 임시 개관한 기념관은 오는 9월 11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지금도 관람할 수 있지만 내부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다소 어수선하다.

기념관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3번 출구에서 931m 떨어져 있다. 매주 화~주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설·추석 연휴와 성탄절, 선거일에는 휴관한다.

이회영 기념관(왼쪽)이 이전한 '캠벨 하우스'의 전경.

이회영 기념관 홍보 엽서에 실린 전경. 지난해 가을 조경을 마친 뒤 촬영한 사진이다. 이회영 기념관 제공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