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도에서 전해온 전도 이야기(7)

입력 2024-07-28 16:30 수정 2024-07-29 11:21

변상호 목사·보길도 동광교회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깊은 산속에서 큰 곰을 맞닥뜨렸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죽은 척해야 할까요. 아니면 너 죽고 나 죽자 덤벼들어야 할까요. 만약 거룩한 법궤를 받았다면 어떻게 합니까. 잘하면 축복이지만 조금만 삐끗해도 죽습니다. 믿음 좋은 다윗왕도 법계 모셔 오기를 주저했습니다.(삼하 6:9)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구원받는 일도, 천국백성 되는 것도, 죄 사함 받는 것도, 다 싫고 막무가내로 죽기를 소원하신 할머니를 맞닥뜨렸을 때 어찌해야 될지 도무지 몰랐습니다. 머리로는 위로와 사랑을 전하면 될 것 같은데 꽉 막힌 할머니 마음에는 전혀 빈틈이 없었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오래된 돌담길 넘어 100여평에 텃밭을 가꾸고 계셨습니다. 그곳은 할머니의 놀이터가 되기도 하고 지금 형편에서는 인생의 낙이 되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그곳에서 10여 종류의 씨앗을 심으며 날마다 지팡이를 의지하시고 다리를 절면서도 하루도 거르지 않으시고 그곳에서 흙을 만지고 계십니다. 집에서 100여미터 거리의 밭은 85세 어른이 농사하기엔 조건이 안 좋았습니다. 물을 주려면 물뿌리개로 겨우 들어다 조금 뿌리고 걸음을 가져갈 힘도 없고 그래서 물조리개로 조금씩 길러서 겨우 말라 죽지 않을 정도로 물을 주다 보니 수고는 많이 하시지만 애를 쓴 만큼에 비해 소득은 적고, 그래서 농부는 이럴 때 늘 농작물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동님 할머니 텃밭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지난날 할머니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있습니다. 자식이 없으신 할머니의 아들이 돼 주려고 합니다.

저는 애지중지 가꾸시는 할머니 텃밭을 틈틈이 시간을 내서 찾아가 밭 전체를 깊게 파서 갈아엎어 거름도 80포를 몽땅 구입해 한 포대를 넣던 장소에 15포대를 넉넉히 뿌리고 10평씩 나누어 종류마다 심기 편리하도록 로터리를 치고 두둑을 반듯하게 만들곤 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호스로 연결해 어느 곳이든 콸콸 물이 나오게 하고 또 3t(15드럼)짜리 물탱크를 설치해 가뭄에도 저장된 물을 넉넉히 사용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시설도 만들어 드렸습니다. 참고로 이곳 섬은 남쪽이라 겨울에도 농사를 얼마든지 지을 수 있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엄두도 못 낼, 눈이 펑펑 내리는 엄동설한에도 앳콩 쪽파 봄동 상추 마늘 등의 여러 종류의 작물을 심을 수 있습니다.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목사로서 능력 있는 말씀과 기도로 회개시키며 영혼을 변화시켜야 하는데 저는 냄새 풀풀나는 거름을 지게로 져 나르고 땅을 파고 텃밭을 일구어 드리는 것으로 할머니 마음의 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85세 노인께서 힘들이지 않고 농사일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마무리하는 날, 할머니는 감탄이 아닌 감동을 하셨고 한 달 후에 할아버지 제사를 마지막으로 지내고 꼭 교회 오겠노라고 묻지 않았는데 먼저 약속을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할아버지 제사는 8월 18일입니다. 할머니는 마지막 제사상을 차려 놓고 “영감, 이게 마지막 제사요 나는 이번 주일부터 교회 가요.” 시간이 조금 흘러 할머니는 그렇게 간증을 하셨고 그다음 해에 가장 아끼며 고이 간직한 새 옷을 입고 감격하시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후 변화 된 삶을 살아가시는 일로 믿지 않는 동네 주민들도 인정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할머니는 “목사님이 5년만 일찍 왔으면 우리 영감도 예수 믿고 죽었을 것인데” 하시며 너무나 안타까워하셔서 저는 “교회를 그렇게 핍박하시던 할아버지가 과연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했더니 “노인들을 이렇게 살피는 목사님과 교회를 누가 싫어하겠능가요” 하셨습니다.

거름 한 포 무게가 20kg입니다. 지게에 두 포를 올려놓으면 40kg이나 됩니다. 저도 이제 환갑이 넘었으니 숨이 막혀옵니다. 갈렙은 84세에도 정정했다는데 말입니다.

기름을 한 드럼 사용하고 죽을 작정을 하셨던 동님 할머니는 이제 연세가 아흔이 되셨고 우리 교회의 가장 든든한 명예 집사님으로 인명 받아 마치 전도에 불붙은 전도사님처럼 일하십니다. 물론 죽을 생각은 전혀 없으십니다. 믿음에 굳게 선 할머니를 보면서 저는 요즘 기도제목을 하나 추가합니다. 저 어른을 상대로 목회하지 말고 효도를 할 수 있도록, 할머니가 오래 사시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 때마다 눈물이 핑 돕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