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권고는 립서비스? “회사원 61% 태풍 뚫고 정시 출근”

입력 2024-07-28 13:00 수정 2024-07-28 14:17
많은 비가 내린 지난 22일 오후 강원 철원군 갈말읍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가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침수돼 구조대가 이동시키는 모습. 연합뉴스

직장인 10명 중 6명 이상은 태풍 폭염 폭설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도 정시 출근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1.4%가 ‘정부가 재택근무 및 출퇴근 시간 조정 등을 권고한 상황에서도 정시 출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고 28일 밝혔다.

이 조사는 여론조사 기관 글로벌리서치가 맡아 지난 5월 31일부터 지난달 10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자연재해 상황에서 지각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했거나 목격했다’는 응답자도 6명 중 1명꼴인 15.9%로 나타났다.

직장갑질119는 “정부 권고가 나온 상황에서도 정시 출퇴근을 요구받는 직장인들은 개인 휴식 시간과 안전을 포기하고 평소보다 일찍 출근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 보육교사는 지난해 8월 태풍으로 휴원 명령이 떨어지자 ‘나오는 애들이 없으니 개인 연차를 차감하고 하루 쉬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서류 업무를 위해 출근하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용주가 ‘비·눈으로 인한 휴게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근로계약서 조항을 들어 비 오는 날마다 출근하지 못하도록 하는 사례도 있었다. 이 경우 장마 기간 임금이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천재지변이나 자연재해 상황에서 근로자가 가질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태풍이 몰아치고 물난리가 나더라도 출퇴근 시간 조정이나 유급휴가 여부는 사규나 고용주 재량에 달렸다.

직장갑질119는 “기후 변화로 태풍, 폭염, 폭설 등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만큼 기후재난 상황에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명문화된 규정 마련이 시급하다”며 기후 유급휴가 제도 신설 등을 제안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