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조선인 노동자 자료 전시”

입력 2024-07-27 15:04 수정 2024-07-27 17:13
2022년 5월 9일 촬영된 사도광산 내 소다유갱 내부 모습. 채광을 하는 광산 노동자를 묘사한 마네킹 등이 설치돼있다. AFP연합뉴스

조선인 강제노역이 이뤄졌던 일본 사도광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한·일 간 협상 끝에 일본이 강제 노역과 관련한 ‘전체 역사’를 알리는 전시관 등을 설치하면서 양국 간 합의가 이뤄져 컨센서스(전원 합의) 방식으로 등재가 결정됐다.

교도통신 등 일본 현지 언론은 27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46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니가타현 사도광산(佐渡島の金山)을 새로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것을 컨센서스 방식으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역의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앞서 사전 조사를 진행한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지난달 등재 결정을 보류하고, “전체 역사를 다루는 설명과 전시 설비를 갖추라”고 권고했다. 일본은 사도광산 등재 문제를 둘러싸고 강제노역 등의 문제가 불거지자 태평양전쟁시기 역사를 제외한 채 등재를 시도했었다.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전시물 중 한국인 노동자 기숙사 및 공동취사장 방문 안내도. 외교부 제공

일본은 한국과의 협상을 통해 전체 역사를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를 수용하고 조선인 강제 노역과 관련한 전시물도 설치했다. 가노 다케히로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관련 세계유산위원회 결정과 이와 관련된 일본의 약속을 명심하며, 특히 한반도 출신 노동자들을 포함한 사도광산의 모든 노동자들을 진심으로 추모한다”고 말했다. 가노 대사는 일본이 이미 강제 노역과 고된 작업 조건 등을 설명하는 전시 자료와 시설을 현장에 설치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이 설치한 전시물은 사도광산에서 2㎞ 정도 떨어진 기타자와 구역에 있는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들어섰다. 박물관 2층 한 구획에 ‘조선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 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가혹한 노동 조건 등을 설명하는 사료를 전시하는 공간이 마련됐다. 열악한 노동 환경을 알리는 영어와 일본어 패널도 설치됐다. 일본은 또 사도광산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식을 매년 사도섬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올해 첫 행사는 이르면 9월 개최될 예정이다.
사도광산 노동자들의 생활상 등을 담은 아이카와 향토박물관 전시물. 외교부 제공

일본의 조치에 한국 정부가 동의하면서 컨센서스 방식으로 등재가 이뤄졌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2015년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 등 근대산업시설 등재 당시 전체 역사를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설명했다. 전체 역사를 반영하라는 요구가 이행되지 않을 경우 관례인 컨센서스 방식을 따르지 않고 표결에 들어가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강제성 인정 문제 등 일본 정부가 약속을 얼마나 성의 있게 이행해 나갈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이 남아 있다. 일본 정부는 하시마 탄광 등재 당시 약속을 저버린 전례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날 사도광산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와 관련해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역사의 진실을 일본 정부에 양보한 외교 실패”라고 비판했다. 사도광산 주변에 조선인 노동자 관련 전시물을 이미 설치했다는 일본 설명에 대해선 “전시에서도 ‘강제 동원’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으며 ‘한반도 출신자를 포함한 광산노동자의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됐다”고 지적했다.

사도광산은 광산 채굴에 기계를 도입하던 16~19세기에 전통적인 수공업 방식으로 순도 높은 금을 생산하는 시스템을 발전시켜 17세기엔 세계 최대 규모의 금 생산지가 됐다. 이번 등록으로 일본의 세계유산은 문화유산이 21건, 자연유산이 5건으로 총 26건으로 늘어나게 됐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