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에 들어서자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이 한눈에 들어온다. 역대 대통령들이 수없이 오르내렸던 익숙한 ‘그 계단’이다. 계단 위로는 웅장한 크기의 ‘금강산수도’가, 천장을 올려다보면 한옥의 ‘공포’ 구조를 본딴 샹들리에가 보인다.
이어 ‘십장생도’가 새겨진 원형 카펫이 깔린 집무실로 들어간다. 대통령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집무실에서 대통령의 책상 자리에서 출입문을 바라보며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디지털 트윈’ 기술을 이용해 청와대 본관의 모습을 실제와 똑같이 구현한 온라인 공간이 문을 열었다. 실내 공간 디지털 전환 전문기업 티랩스는 청와대 본관 건축 설계를 담당한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와 협업해 청와대 본관을 그대로 디지털 복원·재현한 ‘청와대, 우리가 몰랐던 이야기’ 페이지를 지난 23일 공개했다.
이곳에서는 기존의 관람 예절도, 중력의 법칙도 무시한 탐험이 가능하다. 바닥에 눕거나 천장에서 내려다보는 시점도, 로비 기둥 뒤에 숨어서 본관을 바라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듯 현실에서 불가능한 관점의 청와대 모습은 한층 색다르다.
청와대는 2022년 5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대중에 전면 개방됐다. 하지만 실제 방문 시 많은 인원이 제한적인 동선을 따라 이동하며 관람해야 하기에 공간을 자세히 관찰하거나 깊이 이해하기에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있었다.
특히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 등으로 사용된 데다 전통 궁궐 건축양식과 현대적 내부구조가 더해져 관람객들이 가장 사랑하는 청와대 본관은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수요가 많은 공간이었다.
이용자들은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본관 1층과 2층 중 원하는 곳을 선택하여 접속할 수 있다. 1층에는 중앙 로비와 충무실, 무궁화실, 세종실이 있고 2층에는 로비와 접견실, 집무실이 구현되어 있다.
관람하고 싶은 공간에 입장한 후에는 자유로운 조작을 통해 마치 내부를 걷는 것처럼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곳곳에 표시되어 있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공간에 설치된 미술품이나 시설물의 실제 사진과 함께 설계 계획이나 숨은 의미 등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온라인에 공개된 똑같은 청와대 공간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 자유로운 관람이 가능하다.
더욱이 청와대 본관 재현 작업엔 근대 건축 유산을 ‘아카이빙’ 하면서 이용자들에게 건축 그 자체를 집중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이 컸다. 티랩스 황병구 대표는 2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단순히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보존 가치가 있는 정보들을 진품 그대로 복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황 대표는 “실제 청와대 관람에서는 통제로 인해 경험할 수 없는 시점, 예를 들면 계단에 납작 엎드려본다던가 천장에 붙어 건축물을 바라보는 등의 다양한 시선에서의 관람이 가능하게 하고자 했다”며 “혼자서 고요하게 청와대를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온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건축 유산 아카이빙’ 시도는 처음은 아니다. 황 대표는 앞서 전북 전주의 서문교회를 아카이빙 한 바 있다. 그는 “청와대 본관 외에도 춘추관과 영빈관, 상춘재와 같은 부속 건물도 관계부처의 허가를 받는 대로 디지털 구현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