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생성한 동영상이 1억5000만 뷰를 기록했다. 이 영사을 일런 머스크가 공유하면서 그가 만든 것처럼 알려지기도 했는데, 미국의 디지털 아티스트 엘리엇 쿼츠 작품이다. 영상 분야에 특화된 AI인 미드저니와 루마랩을 이용해 12시간만에 만들었다고 그는 밝혔다. 엘리엇은 “세계의 권력자들도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이들을 풍자하면서도 가볍고 코믹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엘리엇은 지난 22일 ‘권력자들의 패션쇼(Power of Runway)’라는 제목의 AI 영상을 자신이 운영하는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와 유튜브의 인터디멘셔널TV 계정(@n_rerun)에 올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하얀 발렌시아가 파카를 입고 런웨이를 당당하게 걷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뒤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화려한 색상의 드레스를 입고 나온다. 휠체어를 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루이뷔통 죄수복을 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연이어 등장하더니 일론 머스크 테슬라 설립자는 피부가 우주복으로 변신한다. ‘KIM’이라고 적힌 옷을 입은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도 무대에 섰다.
엘리엇은 AI 영상을 지속해서 만들고 있다. 그는 엑스 메신저를 통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성형AI에 매혹당했다”며 “아직 우리는 그 잠재력의 겉면만 겨우 손대는 수준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어디까지 가능한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쇼케이스가 되고 싶다”고도 했다. 엘리엇은 “생성형AI 흐름의 최전선에 서 있겠다”며 “계속해서 임팩트 있고 재미있는 예술을 만드는데 이 툴을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일론 머스크가 엑스에 공유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조회수가 순식간에 1억 회를 넘었고, 121만 개의 하트를 받았다. 일부 언론은 이를 일론 머스크가 올렸다고 소개했지만, 제작자는 멀티디멘셔널TV 계정의 엘리엇이다. 그는 “A.I.를 활용한 크리에이티비티(창작력)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예술가”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엘리엇은 “머스크가 유튜브 영상을 공유했더라면”하며 아쉬워했다. 엑스에 올린 영상은 조회수에 따른 수익이 없다.
“일론 머스크가 이 영상을 공유해서 많은 관심을 받은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의 공유는 고맙지만, 제대로 저작권 표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제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일론 머스크가 이 영상을 만든 것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의 공유 덕분에 제 작업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고, 더 많은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1분 23초. 재미로 볼 수 있는 짧은 영상이지만, 인공지능으로 이런 수준의 영상을 만들려면 아이디어만으로는 안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하다. 엘리엇은 이 영상을 만드는 데 12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AI 영상을 미드저니 같은 그림 생성 AI에게 명령만 해서 만드는 것은 아니라고 그는 설명했다. 제작 과정을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기본적인 워크플로우는 미드저니(Midjourney)를 사용하여 이미지를 만들고, 루마랩(Luma Labs·영상AI)의 드림머신을 통해 움직임을 추가하고 비디오로 전환합니다. 그다음 어도브 프리미어(영상 편집 소프트웨어)에서 음악과 함께 편집하는 작업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총 12시간 정도의 작업이 필요했습니다. 프롬프트를 많이 수정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체 과정은 수작업으로 조정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AI 예술이 모두 자동화되어 있다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단일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지만, 저는 AI와 인간의 창의력을 결합하여 더 복잡하고 일관된 예술을 만드는 도구로 활용하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이 영상이 절묘한 점은, AI가 만든 영상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지만, 흥미롭게 볼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가 돋보이고 완성도도 높다는 점이다. 엘리엇은 자신의 유튜브 계정에 모두 55개의 영상을 올려놓았다. 모두 AI로 만든 영상이다. 지금의 기술 단계에서는 AI로 만든 영상에서 인물이나 캐릭터가 일관되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또 손과 피부, 코와 입술 등을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그리려면 AI에게 작업을 지시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엘리엇의 엑스 계정에는 이번 패션쇼 영상을 만드는 과정에서 AI가 엉뚱하게 생성한 영상도 소개돼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넘어지는 장면이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트럼프를 묘사한 초기 그림도 어색하다. 이런 그림을 기초로 해서 영상을 거듭 재생성하거나 아이디어를 바꾸거나 손가락이나 몸짓 하나를 수정하는데도 AI와 끈질기게 씨름을 해야 한다.
페이스북 ‘스테이블 디퓨전 코리아’ 그룹에 이 영상을 소개한 류내원 네오컨버전스 연구소장은 “AI 결과물 올리시는 분들의 제가 아는 분들은 다 엄청나게 미드저니등에서 수천 번 수만 번 생성을 해본 분들이 대다수”라며 “(AI 영상이)아직 어색하게 보이는 점도 있지만, 상당히 빠르게 영상 생성이 좋아져 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런 모습 하나를 만드는데도 교황이 들고 있는 십자가의 모양은 물론이고 무대 위의 그림자와 발의 움직임 등을 자연스럽게 만들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류 소장은 “진짜 작품처럼 AI 결과물을 만드는 분은 눈이 이상해, 손가락이 이상해, 색채가 안 좋아, 빛과 그림자가 말도 안 되게 생성되었어 하며 계속 다시 만드느라 그림 한 장 만드는데 밤샘하며 수백 장을 생성하기도 한다”고 했다.
AI가 생성한 결과물은 아직은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노력과 영감이 얼마나 어떻게 투입되느냐에 따라 차별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면 저작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엘리엇은 “내가 이해하기로는 인간의 작업이 많이 포함된 대규모 프로젝트는 저작권으로 보호받는다”며 “유튜브나 틱톡 같은 플랫폼에서는 내 작업을 무단으로 재게시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 소장은 “사진도 처음에는 작품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한 분야로 인정했듯이 (AI 결과물도) 결국에는 인정하지 않을까 한다”며 “기존의 미술이 사라진다기보다 사진이 한 영역을 했듯이 AI 생성 예술도 예술의 한 분야로서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AI가 만든 영상은 이미 광고에 쓰이고 있다. AI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눈길을 끄는 점이지만, 영상의 자연스러움이나 완성도에서는 아직 향상돼야 할 지점이 많다. 소셜미디어에는 AI 그림과 영상을 작품 수준으로 끌어올린 결과물도 많다. 중국이나 일본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류 소장은 “부천 판타지영화제에서 AI 영화를 다루고 있고 AI 작품 전시회도 열리기 시작했다”면서 “디지털 아티스트라는 분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지방 디지털뉴스센터장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