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일대에서 향정신성 의약품에 취해 롤스로이스 차량을 몰다가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의 형량이 항소심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법원은 그가 사고를 낸 뒤 고의로 달아난 게 아니라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2부(부장판사 김용중 김지선 소병진)는 2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신모씨의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서 신씨의 특가법상 도주치사 및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가 사고를 낸 뒤 고의로 달아난 게 아닌, 약물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증인에게 휴대전화를 찾으러 간다고 두 차례 말했고, 현장에 돌아와 휴대전화를 찾아달라고 했다”며 “약 기운에 취해 휴대전화가 있는 것을 잊고 잠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돌아와서 사고를 인정한 점 등을 고려하면 도주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만 “20대 피해자가 고통 속에 사망한 중한 범죄가 발생했다”면서 “피고인은 피해자 구조보단 휴대전화를 찾는 데 집중했고, 의사에게 허위 진술을 요청하는 등 범행이 매우 불량하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신씨는 지난해 8월 오후 8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압구정역 인근에서 롤스로이스 차량을 운전하다가 인도로 돌진해 A씨를 다치게 하고 별다른 조치 없이 달아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사고 직후 뇌사 상태였던 A씨는 결국 지난해 11월 숨졌고, 신씨 혐의는 도주치사로 바뀌었다.
신씨는 당시 인근 성형외과에서 미다졸람, 디아제팜 등 향정신성 의약품을 두 차례 투약한 뒤 운전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케타민을 포함해 모두 7종의 향정신성 의약품 성분이 검출됐다.
1심은 “피고인은 의사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현장을 이탈했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목격자가 여럿 있었음에도 현장을 벗어나는 이유를 고지하지 않고 119 도착 전 임의로 이탈한 점을 보면 인정할 수 없다”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한편 신씨에게 마약류를 처방하고 환자를 성폭행한 혐의 등을 받는 40대 의사 염모씨는 1심에서 징역 17년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재환 기자 j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