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로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 소상공인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여러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에는 미정산을 우려하는 판매자들의 문의가 잇따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티몬과 위메프를 제외하고는 정산 지연 사례가 발생한 주요 유통 플랫폼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영세 판매자 연쇄 도산까지 거론”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25일 국민일보에 “티몬 사태 이후 우리 같은 플랫폼에 입점하신 판매자분들이 회사로 전화해 ‘당신들은 괜찮으냐’ ‘티몬처럼 문제 생기는 거 아니냐’고 묻고 있다”며 “담당자들은 이상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고 전했다.다른 오픈마켓 관계자는 “저희 쪽으로도 염려하시는 판매자들의 연락이 들어오고 있다”며 “아주 심각한 정도로 많은 연락을 받는 건 아니라서 공식적으로 관련 공지까지 하지는 않고 연락주시는 분들 중심으로 안심시켜드리며 대응 중”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터지면서 오픈마켓 셀러(판매자)들의 우려가 크다”며 “대기업 판매자 이탈에다 대규모 환불 신청까지 이어지면서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중소 셀러의 연쇄 도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재 롯데쇼핑 현대홈쇼핑 신세계 등 대형 유통기업은 티몬과 위메프에서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큰 비중을 차지했던 하나투어 모두투어 교원투어 등 주요 여행사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여행사 하나투어는 티몬·위메프와 체결한 모든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다른 여행사들도 두 회사에 정산 기한을 통보하고 미이행 시 계약을 해지하기로 했다.
문제는 소상공인인 소규모 판매자들이다. “중소 셀러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기약 없이 정산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커머스 판매자 커뮤니티 ‘셀러오션’에서는 집단소송 참여자를 모집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턱없이 적은 유동성, 긴 정산 주기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들은 티몬·위메프 사태를 두고 공통적으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을 보였다.가장 큰 이유는 재무건전성이다. 큐텐은 2022년 티몬, 지난해 위메프를 잇달아 인수했다. 티몬과 위메프는 이미 그때부터 자산보다 부채가 많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감사보고서를 보면 2022년 기준 티몬의 유동부채는 7190억원으로 유동자산(1310억원)의 5.5배였다. 위메프는 지난해 기준 유동부채가 3094억원으로 유동자산(584억원)의 5.3배였다. 비슷한 오픈마켓을 운영하는 지마켓(G마켓)만 하더라도 지난해 기준 유동자산이 8227억원으로 유동부채(7328억원)보다 899억원 많았다.
유동자산을 유동부채로 나눈 유동비율은 지마켓이 112%인 데 비해 티몬과 위메프는 각각 18, 19%에 불과했다.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보유한 자금이 비정상적으로 적었다는 얘기다. 두 회사가 금융 당국에 보고한 미정산 금액은 1600억~1700억원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은 정확한 숫자를 직접 점검할 계획이다.
유동비율은 재무건전성을 확인하는 데 참고하는 지표 중 하나다. 수치가 높을수록 안전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일단 100%를 넘겨 부채보다 자산이 많아야 유동성 경색 우려를 덜 수 있다.
이런 재무 상황에서 두 회사가 결제대금을 되도록 오래 손에 쥐고 있었던 점도 미정산 사태를 키운 것으로 지적된다. 티몬은 고객 결제 후 40일 이내, 위메프는 길면 두 달 뒤에 판매자에게 정산했다. 같은 1세대 오픈마켓인 지마켓은 구매자가 상품을 받고 구매확정을 하면 바로 다음 날 대금을 판매자에게 지급한다. 구매자가 직접 구매확정을 하지 않으면 배송 완료 7일 뒤 자동으로 구매확정을 하고 2영업일 안에 대금을 정산한다.
업계 관계자는 “안타까운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가 봤을 때 티몬이나 위메프가 그동안 자금력 등 상황이 안 좋았던 것도 있지만 정산주기가 좀 길었던 게 뇌관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영세 셀러들 입장에선 자금 회전을 위해 판매대금이 빨리 지급돼야 하는데 과거에는 이커머스 내 정산주기가 제각각이었다”며 “주요 회사들은 친셀러 정책을 펴기 위해 빨리빨리 정산을 하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신사·오늘의집… 위기 확산 가능성은
판매자들은 1세대 이커머스 업체들의 유동성 위기가 업계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커머스 후발주자로 비교적 신생 쇼핑 플랫폼이자 특정 분야 상품·서비스를 취급하는 ‘버티컬 커머스’가 취약하지 않은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대표 업체인 무신사(패션)나 오늘의집(인테리어)은 “유동성이나 정산 지연 문제는 없다”고 답변했다.
무신사 관계자는 “저희는 한 달 주기로 매달 10일 판매대금을 정산하는 프로세스”라며 “안 그래도 오늘 오전에 체크해봤는데 현재 기준으로 정산금이 지연된 사례 없이 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의집 관계자는 “2주 정도 주기로 매달 2차례 판매자에게 정산한다”며 “정산 지연 사례는 없었고 파트너센터를 통해서도 정산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공지했다”고 설명했다. 오늘의집은 구매확정일 기준으로 매달 1~14일 대금을 같은 달 20일, 15일~말일 정산금을 다음 달 5일 판매자에게 지급한다.
이들은 재무제표상으로도 자산이 부채보다 많다. 무신사는 지난해 기준 유동자산 8133억원, 유동부채 5746억원으로 142%의 유동비율을 보였다. 오늘의집은 지난해 유동자산 3604억원, 유동부채 1675억원으로 유동비율 215%를 기록했다. 두 회사는 당장 부채를 다 갚아도 각각 2387억원, 1928억원의 여유가 있다.
두 회사 유동부채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관련 부채를 제외한 금액이다. RCPS는 추후 보통주 전환 시 부채에서 제외하는 항목이라 여타 부채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리디, 컬리, 메가존클라우드 등도 RCPS 관련 부채가 보통주 전환과 함께 자본으로 소멸했다.
이커머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이커머스 업계에선 거래액이나 매출액을 높여 기업가치를 높이는 일에 집중하는 경향이 주를 이뤘지만 티몬, 위메프 사태를 계기로 성장성 못지않게 재무적 안전성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