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됐다.
3년 동안 이어진 전쟁은 남과 북은 물론이고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과 중국·러시아까지 참전했던 국제전이었다. 2차세계대전 직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에 대해 세계교회도 발 빠르게 입장을 냈다.
1950년 7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에서 세계교회 지도자들은 6·25전쟁의 빠른 종식을 위해 유엔의 경찰 행동을 촉구했다. 이런 내용을 ‘한국상황과 세계질서에 대한 성명’에 담았다.
성명에는 ①유엔 한국위원단 조사 근거로 북한의 남침 규정 ②즉각적인 휴전 협상 권고 ③유엔군 통제 하에 소련과 새로운 협상 주도 등의 내용이 있었다.
이 성명은 전 세계 사회주의 국가 교회들을 뒤흔들었다.
헝가리개혁교회는 소식지 ‘더 헝가리안 처치 프레스’에 앨버트 베레츠키 총회장이 당시 세계교회협의회 총무 비서트 후프트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실었다.
베레츠키 총회장은 “세계교회협의회 중앙위원회가 오판했다”고 규정했다.
그는 “중앙위원회는 오히려 서방 세력에 참회를 요청하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했다”면서 “분쟁의 기원은 서방세력의 제국주의적 태도에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독교 국가들의 죄에 대해 침묵했던 교회들은 이제 이 국가들을 편들 권리가 없다”고 했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에 의해 발발했던 2차세계대전 때 침묵했던 유럽 교회들을 꼬집은 것이었다.
헝가리개혁교회는 전쟁 발발 수개월 후에 열린 헝가리 ‘프로테스탄트의 날’ 성명에서도 “(6·25) 전쟁의 위험은 사회주의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식민지 국민을 압박하는 자들에게서 나온다는 걸 깨달으라”고 밝히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체코복음교회 지도자 요셉 로마드카도 “한국 문제는 아시아 전체의 배경 없이 이해할 수 없고 서구 국가들의 무력간섭에 의해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 주장하며 유엔의 개입을 비판했다.
중국교회의 반발은 구체적이었다.
중국교회 지도자들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면담까지 한 뒤 “세계교회협의회가 월스트리트의 도구이자 한국전쟁의 선동자인 덜레스(당시 미 국무장관)의 도구”라고 비난했다. 이 성명을 발표한 직후 중국교회 지도자로 세계교회협의회 공동회장이던 자오쯔천은 사의를 표했다.
자오쯔천은 세계교회협의회에 보낸 서신에서 “애국적인 중국인으로 토론토성명에 항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썼다.
김흥수 목원대 명예교수는 ‘한국전쟁과 세계교회협의회, 1950~1953’라는 제목의 논문에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
김 교수는 “토론토성명은 발표 직후 정치적 입장을 달리하는 세계교회협의회 회원교회들 가운데서 격렬한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로 인한 논쟁은 1953년 7월 휴전 상태에 들어갈 때까지도 계속됐다”고 썼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정전 협정 이후에도 목소리를 냈다.
김 교수는 “휴전에 따라 한국에서 전투가 중단된 후 첫 번째 모인 스위스 보세이 집행위원회에서 ‘한국에 관한 집행위원회 결의안’을 발표했는데 ‘협상과 재건 과정에 의한 정치적 통일과 효율적인 복구’에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세계교회의 관심을 엿볼 수 있던 과정이었다”고 평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