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전자상거래 플랫폼 큐텐 계열사인 티몬과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태가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수많은 중소 판매자(셀러)들이 자금난으로 줄줄이 도산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25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티몬과 위메프 등 큐텐그룹 계열 전자상거래 플랫폼에 입점한 6만곳 가운데 상당수는 중소 판매자다. 대부분 자금 사정이 열악해 판매대금 정산이 제때 이뤄져야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곳들이다.
티몬·위메프 판매대금 정산이 지연되면서 영세 판매자를 중심으로 심각한 자금난에 빠졌다. 상품 매입 자금이 없어 영업 중단 위기에 처한 판매자도 생겨나고 있다. 이달 정산받지 못한 대금은 5월 판매분인데 6~7월 판매대금 정산도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자금난은 갈수록 악화할 전망이다.
전체 미정산 금액을 추산하긴 어렵지만 일부 판매자는 수십억원까지 물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티몬에 입점해 있는 한 판매자는 “정산받아야 할 대금이 수억원대”라며 “버틸 수 있는 시한은 이달 말까지”라고 연합뉴스에 토로했다. 또 다른 판매자는 “카테고리를 불문하고 많은 셀러가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며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특히 디지털·가전이나 여행 등 거래금액이 큰 카테고리 영세 판매자 자금 상황이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상품 단가가 큰 만큼 여신 거래가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다. 여행업계에선 소형 여행사의 도산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도산하는 중소형 여행사가 생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이번 사태로 중소 판매자들의 연쇄 도산이 현실화하면 은행 등 금융권 역시 피해가 불가피하다.
현금 사정이 여의찮은 많은 영세 판매자는 선정산 대출로 당장 필요한 자금을 충당한다. 선정산 대출은 전자상거래 플랫폼 판매자가 은행에서 판매대금을 먼저 지급받고, 정산일에 은행이 해당 플랫폼에서 대금을 받아 자동 상환하는 방식이다.
금융감독원의 ‘7개 플랫폼 입점업체 정산대금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2022년 4년간 선정산 대출총액은 1조3000억원을 웃돈다. 연간 대출액은 2019년 252억원에서 2022년 6239억원으로 25배로 불어났다. 플랫폼별로는 쿠팡 입점사의 대출액이 가장 많고 두 번째가 위메프다. 두 업체는 정산 주기가 상품이 판매된 후 최대 두 달 후로 이커머스 플랫폼 중에서 가장 길다.
문제는 이번 사태로 티몬과 위메프의 매출과 거래액이 급감하고 자금 회전력까지 약해져 판매자 정산이 언제 정상화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티몬과 위메프에서 쌀 상품을 판매해온 한 정미소는 “판매대금 5억2000만원 정산일자가 7월 12일에서 17일, 24일로 밀리더니 결국 24일에도 정산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정미소가 도산하면 농민들 피해도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요 은행들이 티몬과 위메프의 대출 상환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전날부터 두 플랫폼 판매자에 대한 선정산 대출을 중단해 자금줄은 더 막힌 상황이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티몬·위메프 정산 지연 사태를 서둘러 진화하지 않으면 소상공인부터 차례로 도산하면서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며 “정부가 신속히 개입해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