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학폭) 피해자 10명 중 4명이 자살·자해 충동을 경험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아울러 학폭 피해자 40%는 가해 학생으로부터 쌍방 신고를 당하는 등 피해자의 고통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폭 예방 전문 기관 푸른나무재단이 24일 공개한 ‘2024 전국 학폭·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폭 피해로 자살·자해 충동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학생 비율은 39.9%(2023년 기준)에 달했다. 2021년 26.8%, 2022년 38.8%에 이어 3년 연속 증가세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11월 21일부터 지난 1월 19일까지 전국 초·중·고교생 8590명,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8일까지 보호자(학부모) 388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사 결과 전체 학생의 3.5%가 학폭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초등학교가 4.9%로 가장 높았고 중학교 1.7%, 고등학교 1.2% 순이었다.
피해 학생 64.1%는 학폭을 두고 “고통스러웠다”고 답했다. 2017년 같은 문항 조사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아울러 피해 학생의 52.2%는 “학교폭력 피해가 잘 해결되지 않았다”고 밝혔고, 48.8%는 가해학생으로부터 사과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학폭 피해 학생의 40.6%는 가해 학생으로부터 신고를 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재단의 학폭 피해 상담 전화 중 법률 상담 요청 비율도 11.0%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적반하장식 맞고소가 늘어나는 것은 학폭으로 기록이 남으면 입시 등에서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에 가해자 측도 학폭으로 피해자를 쌍방신고해 소송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맞폭’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재단을 통해 “가해자 측이 거짓말로 맞신고를 했다. 신고를 당하고 무혐의 조치를 받기까지 5개월이 걸렸는데 그동안 피해자가 받은 고통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학폭 유형 가운데 특히 피해가 심각한 것은 ‘사이버폭력’으로 나타났다. 사이버폭력 피해자 중 자살·자해 충동을 느꼈다고 답한 학생은 45.5%로, 사이버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학폭 피해자(34.0%)에 비해 높았다.
이날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재단 본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엔 학부모 대표로 김은정(가명)씨가 참석했다. 김씨의 아들은 2년 전 사이버폭력을 당했다. 가해 학생은 SNS로 아들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아들의 사진을 무단 도용한 계정을 만들어 다수의 여학생에게 성적인 표현이 담긴 메시지도 보냈다.
김씨는 “1년이 넘도록 아이에게 사이버폭력이 이뤄졌지만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며 “이제는 (정부와 학교가) 사이버폭력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사이버폭력을 막기 위해 SNS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재단 설문에 참여한 학부모 82.5%는 “SNS에서 발생한 사이버폭력에 대해 플랫폼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답했다. 한 교사는 “익명 소통이 가능한 메신저 등 SNS는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걸 운영 기관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