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익스프레스 美 상장만…” 티몬·위메프, 이렇게 무너졌다

입력 2024-07-24 17:19 수정 2024-07-25 00:09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티몬 사옥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뉴시스

티몬과 위메프가 입점 판매자에게 정산금을 주지 못하는 등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사태의 원인이 모기업 큐텐(Qoo10) 구영배 대표의 오판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구 대표는 티몬·위메프를 비롯해 적자인 이커머스 기업을 마구 사들여 덩치를 키운 뒤 물류 자회사 ‘큐익스프레스’에 일감을 몰아줘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키겠다는 그림을 그렸지만, 적자 기업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장밋빛 꿈이 부메랑이 돼 돌아온 모양새다.

구 대표의 제1 목표는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상장으로 알려져 왔다. 2012년 싱가포르에서 큐익스프레스를 설립한 구 대표는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쳐 온라인 물동량이 급격히 불어났던 2021년 하반기 나스닥 상장에 시동을 걸었다. 당시 큐텐은 큐익스프레스의 희망 몸값을 10억 달러(약 1조3852억원)로 책정하고 상장 업무를 미국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에 맡겼다. 애초 지난 5월을 목표로 관련 업무를 진행했지만,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큐익스프레스의 상장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IB업계에서는 큐텐이 지난 2월 미국 이커머스 기업 ‘위시’를 인수하면서 큐익스프레스 매출액 변동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상장 시기를 2분기 실적 이후로 미룬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핵심 자회사 티몬·위메프가 흔들리면서 계획대로 큐익스프레스를 상장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가 됐다. 티몬·위메프는 큐익스프레스 실적 중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핵심 거래처다. 큐익스프레스는 한국 법인 실적만 금융감독원을 통해 공시하고 있는데 티몬·위메프를 인수한 직후인 2023년 매출액(810억원)이 전년(734억원) 대비 10.4% 증가했다. 큐익스프레스는 큐텐 그룹 내 거래 비중을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2022년에는 매출액이 2021년(848억원) 대비 13.4% 감소했던 점을 보면 티몬·위메프 인수가 실적 개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티몬·위메프가 이번 유동성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면 큐익스프레스의 실적도 함께 고꾸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티몬·위메프의 판매 대금 지연 정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구 대표의 전략은 순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큐텐은 티몬(2022년 9월)과 인터파크쇼핑(2023년 3월), 위메프(4월)를 인수할 때 총 6000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큐텐과 큐익스프레스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을 택해 실제로 내준 돈은 없다. 현금 한 푼 들이지 않고 한국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 8%(위메프 4%·티몬 3%·인터파크쇼핑 1%, 2022년 기준)를 확보한 것이다. 이는 네이버(17%), 신세계(15%), 쿠팡(13%)에 이은 네 번째 규모다. 재계 서열 3위의 SK그룹(11번가 6%)과 5위 롯데 그룹(롯데온 5%)을 손쉽게 제친 묘수로 평가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 상황은 달라졌다. 올해 초 큐텐은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온 11번가 인수를 추진하다 자금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위시를 사들였다. 이때는 주식 대신 현금 2300억원을 줬는데, 인수 자금을 마련하느라 그룹 내 유동성이 고갈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실제로 티몬(2022년 말 기준)과 위메프(2023년 말) 두 회사의 합산 자본총계는 마이너스(-) 8827억원에 이른다. 재무제표가 공개된 큐익스프레스 한국 법인도 지난해 말 기준 자본총계가 -243억원이다. 세 기업 모두 돈줄이 꽉 막힌 완전 자본 잠식 상태다.

자금력이 부족한 구 대표가 ‘큐익스프레스의 나스닥 입성’이라는 무리한 꿈을 좇다 발을 헛디뎠다는 관전평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IB업계 관계자는 24일 “구 대표는 과거 G마켓을 나스닥에 상장해 기업 가치를 부풀리는 데 성공한 경험이 있는데, 큐텐 그룹을 키우면서도 같은 전략을 쓰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적자 이커머스 기업을 줄줄이 달고도 큐익스프레스 상장만 성공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다. 수십조원이 오가는 치열한 이커머스 시장에 손 안 대고 코 풀겠다고 덤볐던 격”이라고 꼬집었다.

국민일보는 구 대표의 입장과 티몬·위메프의 유동성 위기 대처법 등을 묻기 위해 큐텐에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구영배 큐텐 대표. 큐텐

구 대표는 누구? 1966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난 구 대표는 1991년 서울대 자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계 유전 개발 회사 슐럼버거에 입사했다. 이후 대학(천문학과) 선배인 이기형 당시 인터파크 대표의 권유를 받고 2000년 자리를 옮겼다. 인터파크의 경매 서비스인 ‘구스닥’을 만드는 태스크포스의 팀장을 맡았다가 사내 벤처 형태의 자본금 10억원짜리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켰다. 2003년 사명을 G마켓으로 바꾸고 2006년 나스닥에 상장시킨 뒤 2009년 미국 이베이에 55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당시 이베이와 맺은 10년간 경업(경쟁 사업) 금지 조항 때문에 2010년 싱가포르로 건너가 큐텐을 창업했다. 경업 금지가 풀린 2019년 큐텐과 큐익스프레스의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국내 사업을 시작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