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수치”… 보호시설서 20만명 학대 당해

입력 2024-07-24 16:55 수정 2024-07-24 17:04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 AFP연합뉴스

뉴질랜드의 주정부와 종교기관이 운영하는 보호시설에서 지난 50년간 20만명이 학대를 당했다는 조사 보고서가 나왔다.

24일(현지시간) 영국 BBC는 뉴질랜드 왕실위원회가 1950년부터 1999년까지 아동 보호 기관에서 벌어진 학대 행위를 조사한 보고서를 지난 주 웰링턴 의회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왕실위원회는 2018년부터 독립적인 조사에 착수했으며, 100일이 넘는 공청회와 3000여건의 증언, 100만건이 넘는 문서 등을 바탕으로 최종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보호시설을 거친 65만5000명 중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0만명이 학대를 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보호시설에서는 성적, 신체적, 정서적 학대와 방임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학대를 실행한 사람들에는 간병인, 종교 지도자, 사회복지사, 의료인도 포함됐다.

1970년대 레이크앨리스 정신병원의 어린이들은 전기 충격이나 약물 주사 등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부 기관에서는 생명을 위협하거나 성기를 때리거나 독방에 감금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보호시설에서 벌어진 광범위한 학대와 방임은 생존자들의 삶에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혔다고 평가했다. 생존자들은 노숙이나 가난, 중독 등을 경험했고 교육이나 취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았다. 일부 생존자들은 갱단 가입이나 투옥, 자실의 길로 가기도 했다.

이번 조사를 주관한 코럴 쇼 판사는 학대의 방대한 규모에 대해 “국가적 수치”라고 말했으며, 뉴질랜드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보고서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촉구했다. 그는 “돌봄의 대상은 아기들, 어린이들, 젊은이들, 그리고 보살핌이 필요한 어른들이었다”면서 “그들은 지원받고 보호받는다는 미명 하에 끌려갔지만 대신 학대받고 가해를 당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총리의 공식 사과, 교황과 다른 교회 수장들의 공식 사과, 입증된 가해자의 이름을 딴 거리와 시설의 개명, 범죄 가능성에 대한 수사 재개 등 95개의 시정 사항과 138개의 권고 사항을 제안했다.

크리스토퍼 럭슨 뉴질랜드 총리는 보고서에 대해 국가가 보호자들에게 “상상할 수 없는 신체적, 정서적, 정신적, 성적 학대”를 가함으로써 “가능한 최악의 방법”으로 이들을 무너뜨렸다고 말했다. 럭슨 총리는 이어 “사회로서, 국가로서 우리가 더 잘했어야 했고, 나는 그렇게 할 각오가 돼 있다”며 올 연말에 생존자들에게 공식 사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담당하는 에리카 스탠퍼드 교육부 장관은 정부가 1차적으로 보상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적절한 시기에 다른 권고사항들을 신중하게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