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고려장’ 존엄한 죽음 왜곡한 ‘조력존엄사 법안’ 다시 수면 위로

입력 2024-07-24 15:45 수정 2024-07-24 19:57
게티이미지뱅크

말기 환자에게 조력 사망(안락사)을 허용하도록 하는 이른바 ‘조력 존엄사법’(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최근 발의돼 교계·의료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2년 전 국회 문턱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된 법안이 재발의되면서 안락사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인간의 생명을 자의적으로 종결시키는 반생명적인 위험한 법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5일 대표 발의한 ‘조력 존엄사법’은 말기 환자가 조력 존엄사를 요청할 때 담당 의사는 이를 도울 수 있도록 규정한 법안이다. 말기 환자가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며 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조력 존엄사법은 헌법 제36조에 명시된 의사윤리지침에 반하는 사실상 안락사를 허용한 것으로 자의적으로 인간의 생명을 종결시킨다는 점에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다. 조력 존엄사 희망자가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에 대상자 결정을 신청하고, 이를 심의·결정할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심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다. 대상자는 대상자 결정일 1개월 후 자신이 담당의사 및 전문의 2명에게 존엄사 희망 의사표시 후 이행할 수 있으며 담당 의사는 처벌받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조력 존엄사로 인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며 의료진 역시 ‘죽음의 조력자’로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수현 생명문화학회 전 이사장은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조력 존엄사는 인간이 판단해 생명을 제거한다는 의미다. 이것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악용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은 “대한의사협회는 조력 존엄사를 분명히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게 의사의 의무인데 이 법안은 의료진을 살인으로 내모는 법안”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간이 죽을 때 마지막 임종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누군가 곁을 지키고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을 해야 한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 1위인 대한민국에서 국회는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생의 말기에 평안을 누리고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계 및 의료단체들은 법안의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조력 존엄사는 정직하게 말하면 의사에 의한 살인이자 자살 방조”라며 “안락사를 명백한 비윤리적 행위로 금지한 의사윤리지침(제36조)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의사 조력자살을 반대하는 대한의사협회의 공식 입장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도 “잘못된 조력자살 법안은 자살률 1위 대한민국에 왜곡된 죽음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비판하면서 말기 환자를 위한 돌봄 시스템 개선 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력 존엄사를 공식적으로 반대한 대한의사협회는 “환자가 조력사망을 요청하는 것은 환자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았다는 의미”라며 “정책 제안과 함께 임종기 돌봄 환경 조성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개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복음주의의료인협회도 “존엄하게 살 권리를 훼손하고 국민을 끝까지 돌볼 국가의 의무를 저버리는 반인륜적·반사회적인 악법”이라고 비판했다.

김아영 김수연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