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1226원’ 폐지수집 노인에 여름휴가비 건네는 이 교회의 사랑법

입력 2024-07-23 14:03 수정 2024-07-23 16:05
광주 빛고을광염교회 교인이 7월 초 폐지수집 노인에게 '광염 휴가비'를 전달하고 있다. 빛고을광염교회 제공

2017년 7월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날이었다. 폐지를 손수레에 싣고 가던 충북 청주시 70대 할머니가 열사병으로 숨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충북 청주에 수해가 발생해 교회 차원의 재난구호를 다녀온 지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다면’ 이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할머니의 사망 소식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교인들은 이 같은 어르신들이 더 이상 생겨선 안 된다며 이들만을 위한 사역을 제안했다. 폐지수집 노인 휴가비 전달하기 프로젝트 ‘광염 휴가비’ 사역의 시작이었다.

광주 북구 빛고을광염교회(박이삭 목사)는 2017년부터 8년째 ‘광염 휴가비’ 사역을 이어오고 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여름 휴가철(7~8월)만 되면 주머니에 현금 10만원과 편지를 담은 봉투를 들고 다닌다. 일상을 보내는 중에 폐지수집 노인을 만나면 몰던 차를 세우더라도 봉투를 꼭 선물한다. 인증 사진을 남기고 교회에 제출하면 교회 재정부에서 미리 선물한 휴가비를 정산해준다. 지금까지 100여명의 노인들에게 광염 휴가비를 선물했다. 액수로만 따지면 1000만원이 넘는다.

현금과 함께 담긴 편지의 내용도 눈길을 끈다. 편지에는 어르신들을 향한 애정이 물씬 담겨 있었다.

'광염 휴가비'와 함께 담긴 편지 내용. 빛고을광염교회 제공

‘폭염 속에서도 정직하게 수고하시며 세상을 깨끗하게 해 주시는 어르신을 존경합니다. 이번 여름에는 한 일주일이라도 일손을 놓고 시원하게 쉬시면 좋겠습니다. 약소하지만 사랑이 담긴 휴가비를 드립니다.’

박이삭 목사는 2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휴가가 따로 없는 폐지수집 노인들은 생계를 위해 거의 매일 폐지를 모은다. 무더위 기간도 예외는 아니다”면서 “하지만 그렇게 온종일 폐지를 수거해도 최저시급 1시간 수준인 1만원을 벌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몸이 아프거나 날이 안 좋을 때 며칠이라도 쉬면서 좋은 음식을 드시고 건강도 지켰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역을 7년째 이어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3 폐지수집 노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국 폐지수집 노인의 규모는 약 4만 2000명으로 추계됐다. 폐지수집 노인들은 폐지를 수집하는 데 하루 평균 5.4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일주일 가운데 6일을 일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약 55%가 폐지를 모으는 이유에 대해 ‘생활비 마련’을 꼽았다.

하루 꼬박 모은 폐지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월평균 15만9000원. 시급 1226원으로 최저시급(2024년 기준 9860원)의 12%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이 명시하는 기준 근로시간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1일에 8시간인데, 하루 8시간 이상 폐지를 수집해도 1만원을 벌기 힘든 실정이다. 그런 폐지수집 노인들에게 광염 휴가비는 보름 이상의 쉬는 시간, 그 이상의 가치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박 목사는 “휴가비와 함께 어르신들의 노고에 감사한다는 진심이 담긴 편지를 드리기 때문에 사랑과 존중을 함께 드리고 싶은 우리 교회의 마음이 잘 전해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같은 사역이 여러 교회로 퍼져 교회가 있는 곳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아름답게 이뤄지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빛고을광염교회는 서울광염교회(조현삼 목사) 개척 151호 교회다.
광주 빛고을광염교회 교인이 7월 초 폐지수집 노인에게 '광염 휴가비'를 전달하고 있다. 빛고을광염교회 제공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