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복고문화)’ 마케팅이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Y2K(2000년대 초반) 패션이 아이돌 그룹을 필두로 재유행하고 있다. 유통업계도 단종된 제품을 출시하거나 20여년 전 패키지로 한정판 상품을 내놓는 등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레트로 마케팅은 3040에게 추억을 소환하는 한편 1020에게는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간접 경험한 과거의 문화를 경험해볼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유통업계는 레트로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최근 추억의 델몬트 유리병 쥬스를 선보였다. 물통으로도 대신 쓰였던 델몬트 쥬스 유리병은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대표적인 추억의 물건이다. 여기에 라인프렌즈 캐릭터 ‘레니니’를 라벨에 활용해 젊은 세대까지 공략했다.
‘40년 추억의 맛’으로 유명한 ‘피크닉’도 최근의 제로 음료 트렌드에 맞춰 ‘피크닉 제로’를 출시해 대박을 터뜨렸다. 매일유업은 지난 19일 신제품 ‘피크닉 제로’가 출시 18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 팩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해당 제품 출시는 어릴 때부터 피크닉을 즐겨 마시던 한 고객의 요청에서 시작됐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40년 된 추억의 장수 브랜드도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반영하면 새로운 성장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롯데웰푸드 역시 레트로 마케팅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1983년 출시해 2011년까지 생산했던 ‘블루베리껌’을 13년만에 재출시했다. 지난해에는 ‘후레시민트’,‘이브껌’ 등 과거 제품을 내세운 ‘부활! 롯데껌’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레트로 패션 브랜드 미치코런던과 협업해 ‘쥬시후레시’, ‘스피아민트’ 껌을 선보이고 있다. 레트로 마케팅 덕분인지 롯데웰푸드의 껌 매출은 지난해 전년 대비 25% 성장했다.
패션·뷰티업계도 레트로 열풍이다. 짧은 크롭티나 헐렁한 상의, 통넓은 바지, 헤어밴드의 스타일링을 선보인 아이돌 그룹 뉴진스가 Y2K 패션 소환에 일조하면서 유행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아이돌 그룹 에스파가 메탈릭한 소재의 패션, 실버 메이크업을 선보이며 이른바 ‘쇠맛’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과거 가수 이정현, 엄정화 등으로 대표되는 사이버 여전사 콘셉트다. MZ세대들은 이를 ‘힙한’ 스타일로 받아들이며 호응하고 있다.
실제 패션업계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물망 니트, 찢어진 청바지 등 1990년대의 ‘그런지룩’이 올해 유행 아이템으로 꼽힌다. LF가 전개하는 ‘아떼 바네사브루노’의 ‘르봉백’은 특히 실버 색상이 인기다. 패션 브랜드 ‘질바이질스튜어트’의 ‘노아 리본 포인트 토 슬링백’ 실버 컬러도 판매율이 지난 3월 대비 70%까지 성장했다. SPA 브랜드 ‘미쏘’의 ‘그런지 컬렉션’ 제품 중 절반 이상이 품절돼 리오더가 진행되기도 했다.
카메라 필름도 구하기 어려워진 지금 아날로그 카메라가 다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종로 세운상가는 MZ세대 사이에서 필름·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성지가 됐다. 한국 후지필름은 이런 수요를 일찍이 파악하고 지난 5월 ‘인스탁스 미니99’를 출시했다. 스마트폰의 선명한 화질만 경험해봤던 10·20세대가 아날로그 카메라의 뿌옇고 흐린 감성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각 업계의 레트로 마케팅을 보면 현재 레트로 문화 소비 경향을 읽을 수 있다. 과거를 추억하면서 위안을 얻는 3040세대 소비층을 공략함과 동시에 경험해보지 못한 경기 호황 시절의 문화를 소비하며 신선함을 찾는 1020세대 소비층을 아우른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확인된다.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지난해 전국 만 19~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복고(레트로) 문화 관련 인식조사’에서 레트로 문화를 소비하는 이유에 대해 10명 중 7명은 ‘어린 시절 문화가 복고문화로 재소환되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그러면서도 응답자 상당수(중복응답 포함)가 레트로 문화의 유행에 대해 ‘옛것을 소재로 한 새로운 문화현상(83.0%)’, ‘현 세대에게 새로운 문화자극을 주는 경험(82.1%)’ 이라고 보고 있었다. 실제 응답자 10명 중 6명이 레트로 콘셉트를 오히려 ‘힙하게’ 느낀다고 응답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