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딸 엄만 맨날 울기만 할까요’ 40만 편견 깬 그 일상

입력 2024-07-22 00:03
김은혜씨가 딸 온유와 함께 립스틱으로 얼굴에 그림을 그린 뒤 서로 볼을 맞대 하트를 완성하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처


누군가의 도움 없이 몸을 뒤집을 수도 없는 18살 딸을 돌보는 한 엄마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안쓰럽다, 측은하다’는 마음이 먼저 들었는가. 그렇다면 그 편견을 깨줄 장애아 엄마를 소개하려 한다.

주인공은 인스타그램으로 사지마비성 뇌성마비 장애 딸 온유와 함께 보내는 유쾌하고 발랄한 일상을 공유하는 김은혜씨다. 우리가 모두 그렇듯, 김씨는 지치고 고단한 일상 속에서 잠시 웃었던 그 모습을 SNS에 공유한다. 그가 지난달 말 ‘장애아 가족도 마냥 슬프기만 한 게 아니다’는 메시지를 전한 영상은 40만명이 지켜봤다. 김씨는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막 아이의 장애를 알게 돼 깊은 슬픔에 빠진 한 엄마가 울고 웃는 평범한 제 일상을 접하시고 ‘나도 웃어도 되겠다’는 희망을 발견하셨다며 고맙다고 이야기해준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우리 일상을 통해 장애아 가족에게 위로와 힘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의 영상에는 장애아 부모의 댓글이 유달리 많이 달린다. 거기엔 장애에 대한 사회 편견에 지친 이들의 공감과 김씨의 밝고 유쾌한 모습에 대리 만족을 얻는다는 반응이 공존한다.

지난 29일 올린 영상은 40만회 조회수를 기록했다. 김씨가 온유의 목욕을 마치고, 40㎏의 아이를 온몸으로 안아 침대에 눕힌 뒤 머리카락을 말리는 모습이 담겼다. 김씨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통해 누구나 가진 고난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히 털어놓는다. 이 글엔 “가끔 불행하지 않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 이 삶 속에 행복도 있고 슬픔도 있다. 수용하기까지가 어려웠지만 수용하고 나니 함께 행복한 완주를 하기위해 노력하게 됐다” “어떤 사람이 아픈 애 키우는 거 치고 제가 밝다고 말한다. 그럼 우린 맨날 울기만 하냐” 등의 장애아 가족의 댓글이 달렸다.



“저녁 모임을 나갔는데
한 분이 늦어 허겁지겁 들어오며 저를 보더니
이쁘게 하고 나왔다며… 자기는 아이들 케어하고 바빠 늦었고,
그래서 저처럼 차려입지도 못했다며 볼멘소리를 하시는데….

전 이날 저녁을 차려놓고 나오려는데
온유가 똥을 싸서(이런 일은 잘 없는데 하필)
한껏 차려입은 채로 온유 똥 닦아주고 뒤처리 다 해주고 나온 건데
말이죠?!

또 온유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랬는지
“온유는 장애인치고 불쌍하지 않아!”라는 말도 들었어요.

어찌 생각하면 장애인 온유와 사는 삶이 평안히
행복해 보이기만 했나보다 싶어 웃음이 나와요.
그렇다면 참 감사한 일인데요.

혼자의 힘으론 제 몸 뒤집기도 어려운
타인의 도움이 없이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지 마비성 뇌성마비인 온유가 또, 함께 하는 가족들이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면….

그 비결은
그냥! 이예요.

처음 온유를 만났을 땐
왜, 내가 왜, 내 모습이 이게 뭔가
하는 늪에 빠져 많이 우울했었어요.
근데 답은 없죠! 그게 삶이더라고요.

누구에게나 오는 고난이 저에겐 딸의 장애라는 형태로 온 것이고요.
온유를 통해 큰 세상을 알고 나니
내 고난은 그냥 삶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특별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그냥 살아요.
더이상 저를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특해하며
웃을 일이 있으면 웃고 울 일이 있으면 울고
힘든 일이면 이겨내고 쉴 땐 푹 쉬고요.
고민되는 일이면 좀 고민해서 풀고요.

그거 알아요?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살고 그게 인생이더라고요.
그래서 전 일단은 그냥 살아요! 열심히

막내 케어해주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온유 목욕시키자마자
저녁해서 먹자마자 작품 활동해요.
그리고 밤에 푹~~~~자요!

감사함으로 누리는 삶.”

김씨에게는 온유 아래로 비장애인인 두 아들이 있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세 아이와 보내는 일상은 물론 김씨가 멋진 옷을 입고 좋은 식당에 가서 식사하거나 유행하는 노래에 춤을 추는 등 모습이 올라온다. 우리가 인스타그램에서 흔히 보는 그런 장면들이다. 김씨는 “누구에게나 다른 형태의 고난이 있다”며 “장애인이나 그 가족을 불쌍히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김씨도 딸의 장애를 처음부터 쿨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아니었다. 온유가 태어나고 7년 정도 컴컴한 터널 안에서 홀로 방황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도 앓았다. 김씨는 “답답하고 막막하고 외로웠다”고 회상했다. 그런 김씨에게 위로를 전해준 것은 같은 병을 가진 한 아이의 가정이 평범하게 사는 모습이었다. 김씨는 “그 집에 자주 놀러 가서 평범하게 사는 그 모습을 보고 큰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그는 과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슬픔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장애아 부모에게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김씨가 최근 친구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며 느꼈던 단상을 공유한 영상도 15만 재생수를 기록했다. 장애인을 대하는 비장애인의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이 들어있다. 김씨는 “(나와 오랜 절친인 친구 가족은 온유를 대할 때)자연스럽고 오바하지않게 친절하며 적당히 관심 가져주고 또 자기 자신들도 시간도 누리고 기꺼이 함께 애씀에 동참해준다”며 “가장 중요한 건 온유가 모두 누리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지 않고 우리가 더 누리는 것에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게 나와 온유를 편안하게 해준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장애 아이를 키우는 나조차도 비장애인이며 나머지 자녀인 두 아들도 마찬가지”라면서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시선이나 편견은 그들이 장애를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몰라서 혹은 어색해서일 수도 있다. 장애인 가족 입장에서 ‘그들의 말실수를 한번 이해해주고, 잘 모르는 부분을 가르쳐주자’는 쿨한 마음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런 김씨도 온유를 기르며 주변 시선을 경계하며 마음이 강퍅했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길에서 만난 한 할아버지의 반응에서 그는 장애인을 대하는 타인의 시선에 대한 정답을 알아갔다.



“지하철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딱 제 옆에 앉더니 온유를 쳐다보는 거예요. 순간 ‘또 어디가 아프냐’고 한마디 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아이가 참 꽃처럼 예쁘네요’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온유한테 ‘안녕, 너 이름이 뭐야’ 라고 물어보시고 ‘너 참 예쁘다’ 하고 그냥 가시는 거예요. 제가 너무 고맙고 좋아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김씨는 인스타그램에 일상을 공유하며 누군가 위로받았다고 한 반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은 한 장애 아이의 엄마의 것이었다고 했다.



“장애 아이를 낳은 엄마였는데, 그 엄마가 ‘이제 내가 가진 명품백, 화려한 옷을 절대 들거나 입지 못하겠구나. 이 아이를 데리고 어디 가서 크게 웃거나 즐거운 이야기를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도 없겠구나’하는 마음이 들어서 너무 우울했다고 하더라고요. 장애아이를 키우는 것도 힘들지만, 장애아이 엄마는 이래야해 하는 식의 편견의 틀이 되게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거든요. 그런데 인스타그램에서 그렇지 않은 저를 만나고 너무 기분이 좋았대요. 화려한 옷을 입고 맨날 웃고, 심지어 장애 자녀는 한국에 두고 비장애 자녀들만 데리고 한 달씩 해외로 여행을 갔다 오는 그런 엄마의 삶을 말이에요. ‘내가 살던 대로 살아도 되는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면서 제게 너무 고맙다고 하셨어요.”

김씨는 몸이 불편한 온유를 돌보며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했고, 그 고민 끝에 현재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아이를 낳기 전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던 자신의 재능과 온유가 좋아하는 것과의 접점이기도 했다. 그는 2022년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김씨는 “누구나 다 아는 말이지만 마음가짐은 종이 한 장의 차이”라면서 “우리 상황은 변하지 않기에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장애인이나 그 가족들에게 ‘당신이 힘든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에 너무 몰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조금씩 감사함으로 담대히 빛을 찾아가는 과정 속의 삶을 즐기며 누리시길 바란다”고 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김씨는 온유를 낳고 18년 동안 딱 한 가지만을 놓고 기도한다고 했다.

“예전엔 저도 ‘하나님 이것 해주세요’ 같은 기도를 많이 했지요. 그런데 온유가 태어난 지 한 달쯤 됐을 때 응급실에 왔다가 수술방으로 바로 올라간 적이 있었어요. 수술 동의서를 쓰는데 오히려 마음이 담대해지더라고요. 더한 형태의 장애가 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평안해졌어요. 하나님이 제게 주신 평안함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제게 평안함을 주세요’라고만 기도해요. 살면서 고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데, 더 중요한 것은 그 고난을 바라보는 자세가 아닐까요.”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