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차기 대선 승리 가능성이 커지면서 한국 이차전지, 신재생 에너지 기업들의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려가 과하다’는 목소리도 상존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하면 전기차 정책은 폐지하고, 화석연료 활용은 확대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친환경 정책인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대표적인 손질 대상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권을 잡는 것에 더해 공화당이 상·하원 과반 의석까지 차지하면 IRA의 대폭 수정, 극단적으로는 폐지가 가능해진다.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제시하는 보조금 인센티브를 보고 대규모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했고 그 덕에 시장 침체에도 버티고 있는데 이마저 끊긴다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TV 토론, 총격 피습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에 청신호가 켜질 때마다 국내외 전기차, 이차전지, 신재생 에너지 관련 주식은 요동 쳤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더라도 극단적인 정책 변화는 여건상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행정부 주도의 친환경 투자가 이뤄진 지역을 보면 대부분 공화당 지역구다. 대형 생산기지가 요구하는 넓은 부지, 저렴한 인건비, 온화한 기후 등 조건을 갖춘 지역 다수가 공화당 지지 성향이 짙다.
블룸버그에 분석에 따르면 IRA 법안 통과 이후 지금까지 집행된 총 203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 가운데 공화당 지역구에서 이뤄진 비중이 79%(161억 달러)였다. 민주당 다수 지역 비중은 20%(42억 달러)에 불과했다. 2021년 이후 실행된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관련 신규 투자도 공화당 지지 지역에서 더 많았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2일 “트럼프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IRA 폐기는 일자리를 훼손시킬 수 있다”며 “중국 업체들을 AMPC(첨단제조세액공제)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세부 조건을 축소 또는 변경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내다봤다.
친화석연료 정책으로 청정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인공지능(AI) 및 데이터센터 확대로 전력수요의 가파른 증가가 예상되는데 한국과 달리 미국은 태양광, 육상풍력 등의 발전단가가 석탄 발전보다 싸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전기 먹는 하마’인 AI 및 가상화폐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업계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전력망 구축 때 경제성이 높은 신재생 에너지를 포기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트럼프 집권 1기(2017~2020년) 태양광 모듈 설치량을 보면 총 51.3GW로 오바마 정부 2기(33.8GW) 때보다 더 많았고, 설치량 증가 추세도 이어졌다.
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