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일군 교회 남편 사별하자마자 쫓겨나기도…” 홀사모들의 아픔 보듬는 태안나공동체

입력 2024-07-21 14:26
이봉순(왼쪽 네 번째) 사모와 안나회 회원들이 지난달 충남 태안군에 마련된 태안나공동체 개원예배를 드리고 함께 모여 있다. 태안나공동체 제공


이봉순(70) 사모는 12년 전 남편 신중호 목사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떠나보냈다. 슬픔에 잠길 새도 없이 이 사모는 신학을 공부하고 노인요양센터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총회장 류승동 목사) 산하 홀사모 모임인 안나회와 연이 닿아 아픔을 나누며 위로를 얻은 그는 그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모들에게 눈길이 갔다.

안나회에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어 어린 자식을 책임져야 하거나 인생 2막을 준비할 새도 없이 교회 사택에서 쫓기듯 나오는 등 말 못 할 사연을 가진 홀사모들이 많았다. 특히 오갈 데 없는 홀사모들이 마음에 걸렸던 그는 2년여의 준비 끝에 지난달 홀사모 공동체를 열었다. 충남 태안군 태안나(태안+안나) 공동체다.

21일 서울 동작구 한 식당에서 만난 그는 “어떤 홀사모님이 교회가 두 달 안에 사택을 비워달라고 했는데 보증금 2000만원이 없어 친척들에게 손을 벌리는 모습도 봤다”며 “홀사모들이 서로 의지하며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문을 연 홀사모 쉼터인 충남 태안 태안나공동체 전경. 태안나공동체 제공


그는 시어머니의 유산을 털어 낡은 펜션을 사들여 태안나공동체를 꾸몄다. 3382㎡(약 1023평) 대지에 독채 형식 건물 9채와 넓은 텃밭이 마련됐다. 비용을 아끼려 이 사모가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주변 목회자들의 도움도 받았다. 현재는 쉼이 필요한 사모와 여선교사가 ‘한 달 살이’ 개념으로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곧 입주자를 모집한다.

이 사모가 홀사모 공동체를 마련한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 빚진 마음을 갚고 싶어서였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교회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는데 평생 섬기려던 하나님의 성전을 닫은 게 마음에 큰 짐이었다”며 “12년 만에 태안나공동체를 세워 그 짐을 조금 덜었다”고 말했다.

이 사모와 같은 작은 교회 홀사모들은 당장 먹고 살 일도 걱정이지만 교회 문을 닫게 되는 것을 더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남편이 개척교회를 섬기다 세상을 떠난 정희선(66) 사모는 “교회를 정리한 후 카자흐스탄에 같은 이름의 교회를 세웠다”며 “우리 교회가 없어진 게 아니라 카자흐스탄으로 옮겨갔다고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모는 태안나공동체가 홀사모들의 친정 같은 역할을 하는 안식처가 되길 바라고 있다. 지금은 혼자 생활이 가능한 홀사모만 모집하지만 훗날 거동이 어려운 홀사모도 입소할 수 있는 요양시설을 세우는 꿈도 꾸고 있다. 젊은 홀사모들이 요양보호사로 어르신 홀사모를 돌보며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향한 꿈이다.

“홀사모들도 남편 못지않은 사명감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있어요. 아픔을 딛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홀사모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