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채상병 순직 1주기인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청원 관련 청문회에서 정면 충돌했다. 여당 의원들이 불법적이고 위헌적인 청문회라며 연좌 농성까지 벌이며 막아섰지만, 야당은 예정대로 청문회를 강행했다. 청문회 내내 여야 의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갔고, 증인들은 답변을 거부하거나 엇갈린 진술을 내놨다.
청문회에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등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한 주요 증인들이 출석했다. 또 ‘구명 로비’ 의혹을 폭로한 공익제보자 김규현 변호사도 참고인으로 출석했다 증인으로 변경됐다. 반면 강의구 대통령실 부속실장, 박종현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파견 경찰), 김용현 경호처장은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고 불출석했다.
야당은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에 대통령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특히 윤 대통령 ‘격노설’이 불거진 지난해 7월 31일 조태용 안보실장, 주진우 당시 대통령실 법률비서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 등에게 전화를 건 ‘02-800-7070’ 번호의 발신인 정체를 규명하는 데 주력했다.
이건태 민주당 의원은 “7월 31일 오전 윤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 수석비서관 회의를 했다”며 “그 시각에 안보실장, 국방부 장관, 법률비서관에게 전화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전 장관은 “누구와 통화했는지 말할 수 없다”며 끝까지 답변을 거부했다.
이른바 ‘임성근 구명 로비설’의 핵심 인물로 지목된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에 대한 질의도 쏟아졌다. 하지만 임 전 사단장은 “모르는 사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전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출석했다.
여당은 청문회 개최의 절차적 부당성을 강조하면서 채상병 사건 수사 과정에도 대통령실이 개입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 전 장관도 “제가 대통령이나 대통령실 누구로부터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지시를 받은 적이 없고, 저 또한 누구에게도 사단장을 빼라는 지시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연좌 농성, 부상, 고성, 삿대질까지
이날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 청원 관련 청문회’에서는 시작도 전에 여야 의원들이 뒤엉켜 부상을 당하는 등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진행하던 중 청문회 장소인 법사위 회의장 앞으로 이동해 규탄대회를 열고 연좌 농성에 돌입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탄핵 정치 중단하라”, “위법청문 중지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권성동 의원은 규탄사에서 “국회 본회의 의결 없는, 사실상의 조사에 해당하는 탄핵 청문회는 불법이고 무효”라며 “탄핵 청문회는 국민이 직접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대선 불복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은 연좌 농성하는 여당 의원들을 피해 가까스로 회의장에 입장했다. 이 과정에서 전현희 민주당 의원과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이 부상을 당했다. 전 의원은 “회의장 진입을 막은 신원불명의 국민의힘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있었다”며 “그 과정에서 밀치고 몸싸움하는 과정에서 내 오른쪽 뺨을 누군가가 위력을 가했고, 허리를 다쳤고, 오른쪽 발 전체가 굉장히 아프다”고 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의원들도 “우리 당 고동진 의원도 다쳤다. 법사위원장이 밟고 지나가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
회의 시작 이후에도 여야 의원들이 1시간 가까이 의사진행 발언을 주고받으며 실랑이를 벌였다.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불법 청문회를 당장 중단해 달라”고 항의하자,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불법 청문회에 참석하는 이유가 뭐냐”며 “불법 청문회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맞받아쳤다.
여당의 반발이 계속되자 정 위원장은 “국회법에 따라 경호권과 질서유지권을 발동할 예정”이라고 압박했다. 또 여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에워싸자 “퇴거 명령했다. 퇴거불응죄에 해당한다. 들어가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성과 반말, 삿대질도 오갔다. 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청문회 진행에 거칠게 항의하자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번 법사위에 유상범 간사님께서 저에게 뭐라고 하셔서 제가 끼어들지 말라고 얘기했는데, 옆자리 앉으신 곽규택 의원이 ‘왜 나한테 하냐’고 소리를 질렀다”며 “똑똑히 알고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라. 초선이 그렇게 정치를 배우면 안 됩니다”고 핀잔을 줬다. 곽 의원이 항의하자 정 위원장은 “비단 초선 의원만 해당이 되겠냐. 재선·3선 의원도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행은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청문회 도중 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이 개인 휴대전화를 이용해 외부 조력을 받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질타를 받기도 했다. 정 위원장이 추궁하자 임 전 사단장은 “현직 검사인 친척 동생에게 증인 선서 등에 대해 문의를 했다”며 “문자 답변은 못 받았고 점심시간에 통화를 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정 위원장은 “해당 검사의 실명을 확인했지만 공개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임 전 사단장의 행동은 법 위반이자 국회를 모독하는 행위”라며 “해당 검사는 부적절한 행위에 대해 검찰청에서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