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지난 140년간 근대화에 앞장서며 남긴 근대문화유산을 지금부터라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존을 위한 예산이 부족하거나 관리·운영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유실·방치되는 유산이 많은 현실에서 관련 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1일 현재 국가유산청에 등록된 한국 기독교 관련 사적은 3곳,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38곳 정도다. 불교는 국내 역사가 오래된 만큼 970여 곳에 이른다. 대표적인 개신교 사적은 서울 정동교회로 고종 재임기인 1898년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개신교 교회 건물이다. 조선 시대 목조 건축 솜씨가 배어있어 그 의미가 크다. 이외에도 1911년 유진 벨 선교사가 지은 목포 지역 최초의 교회인 양동교회와 일제 강점기 서구 선교사들에 의해 건축돼 손양원 목사가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며 섬겼던 곳으로 유명한 여수 구 애양원교회, 1913년 건립돼 1900년대 초 순천 지역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의 역사와 주거 형태를 살펴볼 수 있는 건축물인 순천 구 선교사 프레스턴 가옥 등이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돼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국에는 한국교회사뿐 아니라 한국근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녀 보존·관리가 절실함에도 국가유산으로 등록되지 못한 문화유산이 많다. 지리산 왕시루봉에 자리 잡은 선교 유적지가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휴 린튼, 스탠리 토플 선교사 등 당시 한국에서 근대화 의술과 교육 사역을 펼친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국전쟁 후 사용했던 목조주택 12채가 남아있다. 현재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지기선보연·이사장 소강석 목사)이 60년 넘은 이 목조건물들을 전문가 조언을 받아 꾸준히 유지·보수하며 관리해왔다.
오정희 지기선보연 상임이사는 “소중한 유적지를 보존하고자 문화재로 등록하기 위한 고증 자료 등을 준비해왔고, 현재 용지를 소유한 교육부와 서울대로부터 이 유적지를 문화유산으로 지정하도록 추진해도 된다는 동의서를 받아둔 상태이다”고 밝혔다.
교계에서는 관계기관과 긴밀히 소통하며 기독교 문화유산 보전과 활용을 위해 실질적으로 필요한 바를 모색 중이다. 국가유산청의 신유철 종교유산협력관이 최근 한국교회총연합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를 연달아 방문했는데, 이 자리에서 각 기관 관계자들은 기독교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할 법적 지원과 형평성 있는 예산 배정 등 교계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종교유산협력관은 1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본청과 개신교계를 잇는 중간 소통창구의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전문가들은 한국기독교 근대문화유산 보존에 관한 시각을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허은철 총신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단순히 개신교만의 종교유산이라는 국한된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의료, 교육, 건축 등의 분야에서 한국 근현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한 큰 틀의 ‘한국’ 문화유산으로서 그 가치를 보존, 계승, 발전시켜나가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나아가 유산 보존에 관한 순수한 의도가 아닌 관광사업에 초점을 맞춰 접근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오 상임이사는 “문화유산에 담긴 한국 초대교회와 선교사들의 얼과 정신을 잘 받들고, 다음세대에게 이를 잘 전수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