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바이블벨트가 뿔났다…왜?

입력 2024-07-07 17:58 수정 2024-07-07 22:29
기사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픽사베이

‘다시 성경으로.’

미국 기독교 신앙의 수호 지역으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바이블 벨트(Bible Belt)’가 꿈틀거리고 있다. 미 중남부에서 동남부에 걸쳐 있는 바이블 벨트는 다른 지역에 비해 개신교의 영향이 지대하다.

이들 지역에서 최근 공립학교 교실에 십계명 게시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통과된 주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주에서는 학교에서 성경 교육을 의무화하겠다는 행정명령이 발표되기도 했다. 날로 세속화되어 가는 미국 사회 속에서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여 지기도 하지만 위헌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미 대선을 앞두고 기독교 보수세력의 결집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시각도 있다. 그런데도 기독교 정신을 핵심 가치로 탄생한 미국의 정체성 위기가 공론화됐다는 견해가 힘을 얻는 동시에 한국의 기독교계도 유념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라이언 월터스 미국 오클라호마주 교육감의 모습. 라이언 윌터스의 트위터

바이블 벨트의 성경 강조

7일 미 주요 언론 등에 따르면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각) 라이언 월터스 오클라호마주 교육감이 주 정부 교육부 이사회에서 ‘주내 모든 공립학교 교실에 성경을 비치하고 학생들에게 성경을 가르친다’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월터스 교육감은 “성경은 헌법과 미합중국 탄생과 관계된 기본적인 문서 중 하나”라며 “오클라호마주의 모든 공립학교 교사는 교실에 성경을 두고 가르칠 것”이라고 전했다.

오클라호마주뿐 아니라 바이블 벨트에 묶여 있는 또 다른 주에서도 성경을 강조하는 내용의 법·제도 시행이 잇따르고 있다.

루이지애나주는 지난 5월 모든 공립학교 교실에 십계명을 의무 게시하는 법을 제정했다(국민일보 6월 21일자 33면 참조). 앞서 4월에는 플로리다주 교육구가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교목이 학생들을 상담하는 프로그램을 전격 허용했다. 텍사스의 경우 2023년 공립학교에 교목을 두도록 하는 제도를 처음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테네시주의 경우 2022년 공립학교에서 진화론 대신 창조론을 가르치도록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비판적 사고 및 과학적 진실에 관한 법(Critical Thinking and Scientific Integrity Act)’으로 불리는 이 법은 진화론 교육을 제한하고 성경에 기반을 둔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을 장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한 반대 입장도 팽팽하다. 반대 측이 제시한 근거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 즉 ‘연방의회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스테이시 울리 오클라호마주 털사 공립학교 교육위원장은 “학생들은 다양한 신앙적 배경을 가졌는데 모두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레이첼 레이저 미국 정교분리연합 대표는 ‘공립학교는 주일학교가 아니다’라고 내용의 반박 성명을 발표했다. 오클라호마 교육협회도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할 때는 성경을 가르칠 수 있지만, 종교적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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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전쟁이 시작됐다

전문가들은 미 교육계의 이 같은 현실을 두고 “세계관 충돌이 본격화됐다”고 보는 분위기다. 미국 변호사인 정소영 세인트폴세계관아카데미 대표는 “미국은 대통령이 취임 때 성경에 손을 얹어 선서하고 미국 헌법은 성경을 근거로 만들어졌다”면서 “미국이 국가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면 국가의 토대인 성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는 “이번 행정 명령이 교육현장에서 시행되기까지 반대파의 소송과 법적 싸움 등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미국이 국가적 토대인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과거 공립학교 학생들은 매일 아침 주기도문과 성경책을 읽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1962년 미국 대법원은 뉴욕주 하이드 파크에 있는 교육구가 수업 전에 각 학급에서 기도문을 읽도록 지시했던 일이 수정헌법 제1조를 위헌했다고 판결했다. 그 이후로 학교에서 조직적으로 종교 메시지를 전하거나 기도를 하는 행위가 금지됐다.

자유와평등을위한법정책연구소 연구실장인 전윤성 변호사는 “수정헌법 제1조는 정교분리의 의미가 아니라 다른 종교를 배척하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1962년 이후부터 국가와 종교를 완전히 분리해야 한다는 법적 해석이 나온 뒤 지금과 같은 논쟁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교는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연방법의 자의적인 해석이 교육 영역에서 영향을 미치니까 보수적인 주에서 주법으로 방어를 하는 것”이라며 “결국 교육 영역에서 세계관의 충돌이 빚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수정헌법을 근거로 논란을 빚고 있는 미 교육계의 세계관 충돌은 바다 건너 먼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헌법의 성경적 가치를 알고 이를 대비해야 할 때다.

미국의 경우 종교계 사립학교는 성경 교육이나 십계명 게시로 인해 법적 논쟁이 발생하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2021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독교 가치를 설립 이념으로 세운 사립학교에서 교수나 교직원의 채용 시 세례교인을 조건으로 채용하는 것을 차별로 보고 금지한 사건이 발생했다. ​

전 변호사는 “그 이후로 미션스쿨들은 종교 교육의 자유와 설립 이념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미국보다도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최근 저서인 ‘왜 대한민국 헌법인가’를 펴낸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은 “우리 헌법의 이념은 인간의 존엄성을 중심에 두고 영국의 마그나카르타 대헌장, 미국의 독립선언과 헌법 등에서도 영향을 받았다”면서 “유물론이나 진화론에선 찾을 수 없는 인간 존엄에 대한 혁명적 선언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헌법을 내세워 학생 인권 등을 강조하며 동성애와 반성경적 가치관을 주입하려는 시도에 앞서 헌법 바로 알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