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대법원 “강제 불임 수술 피해자에 국가가 배상해야”… 시효 만료 불인정

입력 2024-07-04 16:28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해온 강제 불임 수술 피해자들이 3일 대법원 판결 후 법정 밖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일본에서 과거 ‘우생보호법’에 따라 불임 수술을 강제받은 것은 위헌이라며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4일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등에 따르면, 대법원은 전날 강제 불임 수술 피해자들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5건의 상고심에 대해 우생보호법은 입법 시점에서 위헌이었다며 국가에 배상 명령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우생보호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하면서도 시효 만료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1989년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아사히 신문은 “대법원이 우생보호법을 위헌으로 판단한 것은 이번이 13번째이고, 입법 시점에 위헌이었다고 명시한 것은 처음”이라며 “이번 판결을 통해 소송을 제기한 5건만이 아니라 강제 불임 수술 피해자들의 전면적 구제가 가능해졌다”고 전했다.

대법원은 먼저 우생보호법의 위헌성에 대해 “불량한 자손의 도태”를 목적으로 불임 수술을 인정하는 규정은 장애가 있는 사람 등을 “불량”으로 간주하고 있어 “당시의 사회 상황을 아무리 감안해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입법 목적을 위해 생식 능력을 상실케 하는 중대한 희생을 강제하고 헌법 13조가 보장하는 자기 의사에 반해 신체 침습을 받지 않을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정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 수술 대상으로 삼은 것은 차별적 취급으로 법 아래 평등을 규정한 헌법 14조에도 위배된다고 했다. 대법원은 특히 “명백하게 위헌인 법률을 만든 국회의원들의 입법 행위 자체가 위법이었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앞서 1989년에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20년이 지나면 기계적, 절대적으로 소멸한다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반세기 이상 전에 수술을 받은 원고들의 청구권은 소멸했다고 주장해 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피해자들의 청구권은 존속하며 국가의 배상 책임을 살아있다고 판단했다. 당초 위헌으로 평가되는 입법으로 수술을 진행한 국가의 책임이 극히 중대하고, 장애가 있는 원고들의 권리 행사에 제약이 있다는 점, 1996년 법 폐지 후에도 수술은 적법했다며 피해보상을 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시간 경과로 국가가 배상 책임을 면하는 것은 현저하게 정의·형평의 이념에 어긋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는1948년 우생보호법을 만들어서 강제 불임 수술을 시작했다. 우생보호법에는 “우생상의 견지에서 불량한 자손 출생을 방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명시했다. 또 유전성 정신질환, 유전성 신체질환 등이 있는 경우에는 본인 동의 없이도 정부가 설치한 우생보호위원회 심사를 거쳐서 불임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우생보호법은 1996년 ‘모자 보건보호법’으로 대체되면서 폐지됐다. 그동안 불임 수술을 받았다고 여겨지는 피해자는 약 2만5000여명이다. 피해자들은 수십 년 동안 피해 사실을 숨겨오다가 2018년 미야기현에 사는 한 여성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계기로 이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본 국회는 2019년 불임 수술 피해자들에게 일률적으로 1인당 320만엔(약 2700만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고 사죄하는 내용의 ‘일시금 지급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반성과 사죄의 주체가 국가로 명시되지 않은 점 등을 비판하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이어왔다. 아사히 신문에 따르면, 일시금 지급을 인정받은 피해자는 1110명에 불과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