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대통령에 절대적 면책”… 트럼프 큰 승리

입력 2024-07-02 04:29 수정 2024-07-02 09:45
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2020년 대선 전복 시도 혐의 재판과 관련 재임 중 공식적 행위는 절대적 면책 특권이 있다고 결정했다. 그러면서 해당 사건이 면책 범위에 해당하는지를 하급심이 판단하라고 요구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사법 무기화를 바로 잡은 결정이라며 환영했지만, 진보 진영은 대통령을 ‘법 위의 왕’으로 만든 반민주적 결정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이라며 미 국민이 반대해 달라고 촉구했다. ‘폭망’ TV토론 이후 또 하나의 대형 이슈가 터지면서 정치권은 대선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기울였다.

트럼프 편든 보수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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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1일(현지시간) “전직 대통령의 모든 공적인 행동은 면책 특권을 누리는 것으로 추정되나 사적인(unofficial) 행동들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이 없다”고 밝혔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최소한 대통령의 핵심적 헌법적 권한의 행사에 관해 면책특권은 절대적이어야 하고, 다른 공적 행동들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면책 특권을 부여받는다”고 설명했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도 그의 모든 공식적인 행동들에 대해서는 추정적 면책 특권을 받지만, 비공식적 행동들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그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무부 당국자들과 대선 후 진행한 여러 논의에 대해서는 완전한 면책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에게 대선 결과 인증을 거부할 것을 압박한 혐의, 가짜 선거인단 구성에 관여한 역할 등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하급심 법원이 공적·비공적 영역을 구분해 법리 적용을 판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번 결정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만 찬성했고, 진보 성향 대법관 3명은 반대했다. 진보성향의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 케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은 소수 의견에서 “사실상 대통령 주변에 무법천지를 만들어 건국 이후 존재해 온 현상 유지를 뒤엎는 결정”이라며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심각한 장기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에 정치적 라이벌을 암살하라는 명령, 권력을 잡기 위한 군사 쿠데타 조직, 사면을 대가로 한 뇌물 수수 등의 예를 들며 절대적 면책 특권의 허점을 지적했다.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우리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는 (다수 의견에)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앞서 하급심 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임해 ‘시민 트럼프’가 됐다며 대통령 시절의 면책 특권이 더는 그를 보호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해당 혐의가 공적 영역과 관련된 것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사법 리스크 장애물 치운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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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전복 시도 혐의 재판이 11월 대선 전 열릴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전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하급심 법원이 트럼프 행동의 공식·비공식 여부를 결정하겠지만, 이 과정은 준비와 진행에 시간이 걸릴 수 있다”며 “대선 전 2020년 선거 개입 사건 재판이 열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고 전망했다.

워싱턴포스트(WP)도 “백악관 권력에 대한 광범위한 새로운 정의가 내려져 트럼프의 선거 개입 사건은 더욱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급심 법원은 최소 32일 동안 사건에 대한 작업을 재개할 수 없을 것이고, 재판이 진행되더라도 증거가 상당히 축소된 상태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대법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식 행위와 비공식 행위를 구별할 때 판사가 트럼프의 동기를 조사할 수 없다고 제한했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비공식적인 행위에 대해 기소할 때 공식적인 행위를 증거로 사용할 수도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결정으로 트럼프는 사실상 그가 바랐던 거의 모든 것을 얻게 됐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 승리해 백악관으로 복귀하면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에 대한 공소 취하를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NYT는 하급심 법원이 대선 직전인 9~10월쯤 심리를 재개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혐의와 증거가 공개돼 캠페인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전 대형 사법리스크 상당 부분을 해소하면서 대선 행보에 날개를 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폴리티코는 “대법원이 트럼프에 큰 승리를 선사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도 “이런 마녀사냥은 일어나선 안 됐을 일”이라며 “민주주의와 우리 헌법을 위한 큰 승리”라고 환영했다. 존 바라소 공화당 상원의원은 “사법부의 무기화를 종식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 측 데이비드 겔먼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과 이후의 모든 대통령은 이 판결을 축하해야 한다. 대통령이 수갑을 차면 효과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긴급 기자회견에서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이라며 “미국 국민은 법원이 했어야 할 일을 해야 하고, 트럼프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바이든 캠프도 “대법원이 트럼프에게 독재 정권의 열쇠를 건네줬다”며 “권력을 얻으려는 사람을 암살하고 감옥에 가둘 허가증을 준 것”이라며 “트럼프가 2020년 선거에서 패배한 후 폭도들에게 결과를 전복하도록 부추겼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반역이나 반란 선동을 대통령에게 부여된 헌법적 권한으로 간주해선 안 된다”며 “미국과 우리 민주주의의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도 “건국자들은 우리나라가 절대적인 처벌을 면할 왕이나 군주에 의해 통치되기를 의도하지 않았다”며 “미국 미래의 위험한 선례”라고 말했다.

테드 리우 민주당 하원의원은 “트럼프가 임명한 극단적인 대법관들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헛소리를 했다”며 “대법원은 더는 민주주의를 보호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