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민간회의 ‘다보스포럼’의 주최사 세계경제포럼(WEF) 내부에 성희롱, 인종차별 등 부적절한 행태가 만연하다는 사실이 2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보도로 드러났다. 다보스포럼은 세계 각국 정·재계와 학계 저명인사가 모여 인류가 맞닥뜨린 중대 문제들에 대해 토의하는 행사다.
다보스포럼이 양성평등과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등 이상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것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각종 성추문과 차별 대우로 썩어 있는 상태라고 WSJ은 지적했다.
구설의 핵심 인물은 WEF 창립자 겸 집행위원장인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다.
슈밥은 “조직을 젊게 변화시켜야 한다”며 50세 이상 직원을 모두 해고하라고 지시했다. 세계은행 임원 출신이자 당시 인사책임자였던 파올로 갈로는 ”성과 부진 등의 적절한 사유 없이는 해고할 수 없다”며 가로막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슈밥은 갈로를 해고했다.
임신한 직원을 대상으로 부당대우를 일삼았다는 폭로도 나왔다. 본래 사내 스타트업 관련 프로젝트를 이끌 책임자로 한 여성 직원을 발탁했는데, 그의 임신 소식이 알려지자 슈밥은 “이전과 같은 속도로 일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를 새 직무에서 배제했다.
슈밥 회장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는 직원 증언도 다수 등장했다. 슈밥 비서실의 사무원으로 일했던 한 여성은 그가 사적인 저녁 자리와 여행을 제의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슈밥에게 “성적인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의사표시를 했다고 한다.
2000년대 스위스 제네바 사무국에서 일한 한 여성 직원은 슈밥 회장이 책상에 한쪽 다리를 올려놓고 자신에게 성희롱을 한 사례를 전했다. 당시 슈밥은 자신의 사타구니가 직원 얼굴 앞에 놓인 상태에서 “(당신이) 하와이 전통 복장을 한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등 추파를 던졌다고 한다. 해당 직원은 “여성으로서 겪을 수 있는 끔찍한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WEF 전·현직 임직원을 80명 이상 인터뷰한 WSJ은 “최소 6명이 임신, 출산의 사유로 경력상 불이익을 받았고 또 다른 6명은 사내 고위층으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고 전했다.
사내에는 인종차별 분위기도 만연했다. 고위 관리자가 흑인 비하 욕설인 소위 ‘N워드’를 공공연하게 사용한 사례가 두 차례 확인됐다. 이들 중 한 명은 해고됐지만 다른 한 명은 여전히 포럼에서 근무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 직원들이 승진 기회나 다보스 행사 기획에서 배제되는 일도 잦았다.
WSJ은 WEF가 매년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를 발행하는 기관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막상 해당 단체의 기업문화는 그들이 표방하는 이상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미국 에너지부 관료 출신이자 포럼 경영진으로 일했던 셰릴 마틴은 “포럼이 지향하는 바와 실제 내부 모습 사이의 간극이 가장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WEF는 30일 홈페이지에 게재한 반박문을 통해 “중대한 부정확성과 근거 없는 추측을 담은 기사”라며 “지난 50년 동안 우리와 함께 일한 3500명 중 WSJ은 소수만 만났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정작 슈밥 회장은 WSJ 취재가 진행 중인 지난 5월 21일 “포럼 집행위원장직을 내려놓고 이사회의 비상임 의장으로 남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천양우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