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일본 도쿄 미나토구 소재의 TKP 가든시티 호텔. 테이블에 앉은 일본 현지 소비자품평단 4명이 ‘한국표’ 우롱차 밀크티를 조심스레 한 모금 마신 뒤 평가를 내놨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던 차(茶) 판매업체 다정 장경진 대표는 ‘맛있다’는 통역에 그제야 안도하며 피드백을 꼼꼼하게 노트에 기록했다. 장 대표는 “일본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평가를 듣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날 품평회 행사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6월 27~28일 일본 도쿄에서 개최한 ‘K-푸드 페어 인 도쿄 2024’의 일환이었다. 냉동잡채, 만두 등을 수출하는 한국 음식 업체 45개사가 참석해 96명의 일본 현지인 전문 소비자품평단을 대상으로 자사 제품을 소개하고 ‘냉정한’ 피드백을 듣는 자리다. 수출업체들은 이튿날 국내 현지 법인, 현지 바이어 및 대형 유통업체 등과 일대일 맞춤형 상담회를 통해 구체적인 수출 및 유통전략 컨설팅 기회도 얻었다. aT에 따르면 이번 행사 기간에 올린 상담 실적은 총 4800만 달러(약 633억원)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수출 협약규모(MOU)도 3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K-푸드는 지난 20년 동안 일본 시장에 자리 잡았다.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 히트로 한국 식품 이미지가 바뀐 이래 아이돌 그룹을 주축으로 한 K팝 인기, 코로나19 기간 중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로 한국 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 식문화도 덩달아 확산됐다.
현재 일본에서 한국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은 1만 점포에 이른다. 글로벌 프랜차이즈의 대명사 맥도날드가 일본에서 3000점포 미만인 것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수다. 현지 소비자들도 K-푸드에 익숙하다. 이날 품평단으로 참가한 치바 출신 카사하라(40)씨는 “한국 요리는 집에서 가족이 만들어주거나 식당에서 먹는다”고 말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인기가 높지만 K-푸드의 대일(對日) 수출은 정체 상태다.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식품 수입 실적은 최근 7년간 연평균 20억 달러 내외에 멈춰있다. 최근 5개년으로 좁히면 수출 실적은 더 떨어진다. aT에 따르면 K-푸드의 일본 수출 실적은 2019년 14억2690만 달러(약 1조9719억원)에서 2023년 14억3510만 달러로 최근 5년간 13억~15억 달러 선에 머물렀다.
수출이 정체한 배경으로는 현지 생산이 증가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일본에서 K-푸드가 정착하는 과정에서 현지에 직접 공장을 짓고 제품을 출하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윤상영 aT 일본지역 본부장은 “어느 정도 수출이 궤도에 오르면 (수출이) 현지 생산으로 대체되거나, 한국보다 더 생산·인건비가 저렴한 나라에서 생산한다”며 “한국 농업인의 소득 증대와 국내 식품산업 육성 측면에선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고유의 지속가능한 수출 품목이 부재하다는 점도 K-푸드 수출 성장세를 주춤하게 하는 요인이다. 윤 본부장은 “뉴질랜드 키위, 프랑스 와인, 노르웨이 연어, 스페인 돼지고기, 네덜란드 종자처럼 이들 품목은 단일로만 수출 실적이 수백억 달러에 달한다”며 “우리나라도 이런 품목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K-푸드 박람회’에서 민관이 특별히 합심한 것도 이처럼 정체 상태인 일본 K-푸드의 재도약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특히 올해는 역대급 엔저와 물가 상승 여파로 K-푸드의 수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하면서 유망한 K-푸드 품목 발굴이 더 절실해졌다. 행사에 참여한 농심 현지 법인 관계자는 “일본 유력 대형 유통·공급업체를 한자리에 상담하는 기회를 통해 K-푸드 수입 확대를 위해 현지에서 더욱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농식품부와 aT는 올해 행사에서 도쿄, 오사카 등 주요 대도시 권역 이외 지방 2선 도시 바이어들로 참여 범위를 확대했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교토, 히로시마 등의 지방 바이어는 26개사 44명으로 지난해 10개사 17명과 비교해 2.5배 늘었다. 농식품부와 aT는 또 이번 수출상담회 성과를 높이기 위해 ‘K-푸드 신상품 제안회’를 함께 개최하고 현지 공급업체에 예비 수출품목의 정보, 일본 내 K-푸드까지 종합적인 시장 동향 정보를 제공하도록 독려했다.
일본에서 K-푸드 진흥을 위해서는 한국 고유의 ‘K-프리미엄’을 독자적으로 구축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윤 본부장은 “소비자들은 ‘나이키’를 미국산이 아닌 나이키 그 자체로서 인식한다”며 “K-푸드도 마찬가지로 브랜드로서 인식되도록 ‘K-푸드 로고’ 부착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등 자체 브랜드화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부터 유럽연합(EU)에 닭고기 수출을 허용한 것처럼 과감한 수출 개방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현재 한·일 간 축산 부문은 방역 등을 이유로 극히 예외적으로만 수출을 허용하고 있다”며 “실적 기여도가 큰 이 품목을 개방할 경우 K-푸드 실적은 지금보다 10배는 뛸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오엽 aT 수출식품이사는 “농식품부와 aT는 전통적인 수출 주력 시장인 일본에서 K-푸드가 추가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펼쳐 다양한 K-푸드 신제품이 더욱 많이 수출될 수 있도록 박차를 가하겠다”라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김혜지 기자 heyj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