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발생한 경기 화성시 아리셀 공장 화재 사고가 수습 단계를 거쳐 본격적인 원인 규명 절차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정부는 현장에 남아있던 위험 물질을 제거하고, 아리셀의 불법파견 및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기 위해 전방위 수사에 나섰다.
소방당국은 27일 오후 4시부터 약 9시간에 걸쳐 화재 현장에 남아있던 폐전해액 800ℓ와 반응기 400ℓ를 수거했다. 배터리에 남은 전해질에 물과 닿으면 유독가스를 발생시킬 수 있는 염화싸이오닐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민길수 지역사고수습본부장은 28일 브리핑을 통해 “추가 피해 방지를 위한 폐전해액 수거를 안전하게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화재 현장 수습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며, 화재 원인과 책임 소재를 밝히는 작업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민 본부장은 “아리셀 불법파견 문제와 관련해선 경기고용노동지청에 수사팀을 꾸려 조사 중이며, 향후 법 위반 여부를 철저하게 확인해 엄중히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 화재사고를 여러 원인이 누적적으로 쌓인 총체적 부실로 보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아리셀 화재사고 수사본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지난 26일 아리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리튬 배터리 제조 공정과 안전 분야에 관한 서류 및 전자정보 등을 분석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선 아리셀은 위험물질을 제대로 보관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리튬과 같은 위험물질은 작업장 외 별도의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화재가 발생한 공장엔 작업장 내에 리튬 배터리가 쌓여 있었다. 결국 배터리 하나에서 발생한 불은 순식간에 커졌고,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경찰은 아리셀이 관련 규정을 지키지 않았는지 여부를 수사할 방침이다.
이번 사고가 ‘예견된 사고’라는 지적도 있었다. 화재 발생 3개월 전 소방활동 자료조사, 19일 전 화재안전컨설팅, 이틀 전 같은 장소에서 소규모 화재 발생 등 여러 차례에 걸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던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아무 조치도 하지 않은 아리셀의 대처에 불법 사항은 없었는지도 수사 대상으로 삼았다.
아리셀은 또 불법으로 노동자를 파견받아 투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아리셀 측은 지난 25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불법파견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인력공급업체 ‘메이셀’과 도급계약을 체결해 적법하게 인력을 공급받았고, 업무도 메이셀 측에서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 본부장은 “아리셀과 메이셀간 도급 계약서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메이셀 측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당국에 계약서를 제출해 주면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고, 지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에서도 계약서가 있었는지는 확인해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사망자 23명의 신원은 모두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7일 오후 5시, 기존에 신원이 확인된 사망자 17명에 더해 6명의 DNA 대조 결과를 경기남부청 아리셀 화재사고 수습본부에 통보했다. 이로써 모든 사망자의 신원 확인이 완료됐다.
한국인 5명을 제외한 외국인 사망자 국적은 중국 17명, 라오스 1명이다. 성별은 남성 6명, 여성 17명이다. 지역사고수습본부는 희생자들의 사인이 구체적으로 확인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