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4월 호러스 G 언더우드 선교사와 헨리 G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의 제물포 도착 이전에 로버트 S 매클레이(1824~1907·맥리화·사진) 선교사가 있었다. 1884년 6월 미국 감리교 일본 선교사로 교단 공식 파송이란 합법적 절차를 밟아 조선 땅에 내한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다. 매클레이 선교사가 김옥균을 통해 조정에 친서를 전달함으로써 고종으로부터 학교와 병원을 중심으로 한 선교 윤허를 받았다. 한국 기독교 선교 140주년의 문을 연 매클레이의 활동과 고종의 선교 윤허를 기리는 일이 감리교 본부 선교국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26일 서울 중구 덕수궁 옆 중명전에서 태동화(62) 기독교대한감리회 선교국 총무를 만났다. 중명전은 1884년 6월 23일 제물포를 거쳐 24일 한양에 당도한 매클레이 선교사가 당시 루시어스 H 푸트 미국 공사에게 요청해 감리교 선교부지로 준비한 장소다. 그해 9월 호러스 N 알렌 의료선교사가 입국해 집터로 삼으면서 이 장소는 감리교에서 장로교로 넘어가고 이후 고종이 머물다 훗날 을사늑약까지 체결하는 곳으로 진행된다. 중명전 벽돌건물 아래서 선교국 태 총무는 감리교 선교 140주년의 역사를 떠올렸다.
“1885년 4월 5일 부활절은 한국교회의 선교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가능하게 된 것은 1884년 6월 24일에 감리교회의 공식 선교사 매클레이가 한양에 들어와 7월 2일 고종으로부터 선교 윤허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매클레이는 미 선교부의 정책에 따라 조선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1884년 8월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조선 전도위원회를 설치하고 이어서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이 일본에 도착해 이듬해 부활절 이후부터 공식 입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감리교회 입장에서는 미 선교부와 매클레이의 선교 윤허를 받은 1884년을 선교의 시작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기감은 다음 달 2일 가우처 목사 기념 예배당인 서울 중앙감리교회(이형노 목사)에서 고종의 선교 윤허 140주년 기념 사진전과 감사예배 및 기념 찬양제를 준비 중이다. 가우처 목사는 미국 대륙횡단철도에서 갓 쓰고 도포 입고 찾아온 조선의 보빙사절단을 만나 한국 선교의 섭리를 깨닫고 이를 준비한 인물로, 매클레이 일본 선교사를 조선에 파견한 당사자다. 오는 9월엔 선교 140주년을 기념하는 신학 세미나가 열릴 예정이며, 이어 감리교 초기 선교사들의 선교 현장인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 미국 펜실베이니아 등을 방문하는 순례 여정을 기획하고 있다.
선교국 태 총무는 선교 14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교인이 아닌 세상에 관심을 둔 선교 초기의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선교 초기 한국교회는 이 민족의 희망이었습니다. 선교와 봉사, 교육과 의료 그리고 사회복지,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모든 부문에서 한국 사회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교회가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잃었습니다. 오히려 사회로부터 ‘교회가 게토화되고 있다’는 비판을 들으며 걱정을 끼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은 교회를 이처럼 사랑하신 게 아니고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선교 초기의 순교도 각오한 마음으로 돌아가 진정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