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참사 참담, 이주노동자는 우리 시대의 전태일”

입력 2024-06-26 13:54
지난 25일 경기도 포천에서 만난 김달성 목사.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그는 “이주노동선교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포천=신석현 포토그래퍼


“아침부터 기자들 전화가 끊이지 않네요. 너무 바쁜 하루예요.”

김달성(69) 목사는 25일 인터뷰 장소인 경기도 포천의 한 카페에 들어서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그는 이주노동자의 팍팍한 삶을 전하는 이 분야의 대표적인 활동가다. 그에게 국내 언론의 취재 요청이 이어진 것은 전날 경기도 화성에서 벌어진 참사 때문이었다. 리튬배터리 제조공장 화재로 목숨을 잃은 23명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는 18명에 달했다.

김 목사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참담한 심경”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는 신산한 삶과 한국교회를 향한 주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주노동자, 우리 시대의 전태일

김 목사가 인터뷰에서 이주노동자 문제의 키워드로 꼽은 개념은 ‘위험의 이주화’였다. 화성에 벌어진 참사에서 알 수 있듯 산업 현장에서 힘들고 더럽고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일을 이주노동자가 도맡고 있다는 의미였다. 결혼이나 학업 등의 목적이 아닌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것으로 짐작되는 이주민은 150만명 수준인데, 이들 상당수는 2004년 도입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왔다. 이 제도 덕분에 성공적인 이주민 관리 시스템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주노동자의 기본권이 침해됐다는 비판도 많다.

인권단체나 노동단체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 것은 사업장 이동 제한 규정이다. 이주노동자는 사업주의 승인이 있거나 임금체불 같은 위반 사항이 있을 때만 일터를 옮길 수 있다. 김 목사는 “사업장 변경의 자유를 극도로 제한한 탓에 노동자들이 강제 노동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사업주의 노예로 만드는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의 산재 은폐율이 80%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한국 노동 시장의 맨 밑바닥에 이주노동자가 있습니다. 저는 이주노동자가 우리 시대의 전태일이라고 생각해요. 어쩌면 전태일보다 못한 삶을 산다고도 볼 수 있어요. 전태일은 일터 이동의 자유는 있었으니까요.”

코로나19 탓에 주춤하던 한국의 이주민 규모가 팬데믹이 꺾이면서 다시 늘어나는 조짐을 보이자 이주민 선교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를 섬기는 이른바 이주노동선교는 주목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이주민 선교는 에반젤리즘(복음 전도)에만 치중된 경향이 있다”며 “이주노동자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선교가 절실하다. 그래야 그들의 삶에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목회

충남대 의대생이던 김 목사가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였다. 한국대학생선교회(CCC) 소속이던 친구의 끈질긴 전도로 난생처음 교회에 갔는데 그곳에서 한국CCC 창립자인 김준곤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예수님에게 정신적으로 압도당하고 말았어요. 나를 만든 존재, 즉 하나님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뛰더군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찬양을 할 정도로 황홀한 시간을 보냈죠.”

김 목사는 의대를 자퇴하고 감리교신학대에 편입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엔 서울 사당동과 봉천동 등지에서 목회를 하며 빈민 선교에 몰두했다. 80년대 말, 동구권 사회주의가 몰락하자 ‘마음의 변혁’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인천 부평의 한 교회에서 평범한 목회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즈음엔 교회 부흥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성장주의 목회’에 빠져 산 시기였다.

하지만 교회 건축을 하느라 떠안은 부채가 그의 삶을 옥죄었다. 외환위기 탓에 이자로 내야 할 돈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아내는 파킨슨병에 걸렸고 결국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이후 공황 장애에 시달린 김 목사는 목회를 중단해야 했다.

오랫동안 재충전을 시간을 가진 뒤 2011년 목회를 다시 시작한 곳이 포천의 한 교회였다. 김 목사는 “주말에 시내에 나가면 동남아로 착각할 정도로 이주민이 많았는데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니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며 “이주노동자를 섬기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18년 포천이주노동자센터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평일이든 주말이든 산재나 임금 체불 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노동자가 있다면 이들과 함께 관공서나 병원을 찾아다닌다. 밤낮없이 각종 상담도 진행한다. 김 목사는 “주로 경기도 지역에 있는 노동자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온다. 이주노동선교는 ‘24시간 스탠바이’ 해야 하는 분야”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마음의 중심에 기둥처럼 세워놓은 말씀이 있어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자신과 누군가를 동일시한 대목은 이 부분밖에 없어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일까요? 아마도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주노동자일 겁니다.”

포천=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