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牧民)’.
고영근(1933~2009) 목사가 일생을 바쳐 펼쳤던 목회를 표현한 단어다. 목회자가 민중의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하며 신앙을 돌봐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한국교회 선교 140주년을 맞이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총회장 김의식 목사) 총회가 인물연구를 펼치면서 고 목사의 목민 정신이 회자되고 있다.
1933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난 고 목사는 목회자 교육과 부흥회를 통한 복음 선포에 헌신한 인물로 박정희 정권에 불응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정권을 겨냥한 설교를 하다 구속된 것을 시작으로 25차례나 투옥·연행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고 목사는 민중과 늘 함께한 목회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지역의 총가구 수를 비롯해 인구수와 각 직업, 과부, 병자 현황 등을 분석하곤 맞춤 사역을 펼쳐갔다. 교회 밖으로 찾아 나가는 방식이었다. 지역 인근 보육원과 교도소를 방문해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처지에 관심을 두고 사역을 펼쳤다. 고 목사가 생전 “사회 속에 있는 교회가 어찌 사회에 대해 무관심 할 수 있는가”라며 “양 떼가 굶으면 나도 같이 굶고 양 떼가 울면 나도 같이 울겠다”고 말한 대목에서 민중을 향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예장통합 역사·선교유산회복위원회(위원장 김성수 목사)는 11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한국교회사포럼을 열고 고 목사와 같이 근현대사에서 고군분투했던 목회자의 삶을 소개했다. 자리에선 김치영(1925~2000) 목사의 삶도 재조명됐다.
1925년 경상북도 의성군에서 출생한 김 목사는 ‘불편함의 목회’로 유명하다. 1950~1990년대 대구 지역에서 주로 활동한 그는 좀 더 좋은 환경의 목회를 추구하지 않고 빈민·병자·개척 사역에 진력했다.
김 목사는 죄인 된 인간 현실에 대한 각성을 비롯해 철저한 회개와 심판을 대면하는 결단을 강조했다. 번영과 성장을 바라는 축복 중심의 복음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가르침은 근원적인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내용이었다.
김 목사는 불편함을 교인과 제자들에게만 전하지 않았다. 되레 불편함을 겪는 것에 앞장섰다. 김 목사의 아들인 김동선씨는 회고록에서 “김 목사님은 이 세상에서 뭔가 편안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사셨다”며 “이는 부정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신앙적이지 못한 세상 분위기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