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無)로부터의 창조’라는 교리와 ‘혼돈을 극복한 창조’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이것이냐 저것이냐 관점으로 접근해 일방적으로 정죄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왔다.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존 웨슬리가 자연과학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점을 떠올리며 관용의 정신을 되새기자는 조언도 제시됐다.
연세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 한신대 종교와과학센터, 한국기독교교양학회, 한국문화신학회, 한국민중신학회, 과학과신학의대화, 한국연구재단, 전국신학자공동대책위 등 학술단체는 3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원두우 신학관 2층 예배실에서 ‘나는 창조의 하나님을 믿습니다-기독교 교양인을 위한 창조신학’ 연속 강좌를 개최했다.
홍국평 연세대 신과대 구약학 교수가 ‘구약성서와 무로부터의 창조’를 제목으로 첫 번째 발표를 맡았다. 홍 교수는 조직신학과 성서신학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이 쓰인 당시의 고대 근동이란 맥락을 인식한 가운데 성서신학이 조직신학에서 분리돼 발달한 점을 인정하고 양립 가능함을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로부터의 창조’란 개념이 성서에 분명히 드러나진 않고 훨씬 후대에 등장한 개념이란 점, 창세기뿐 아니라 시편과 욥기 등 여러 창조 관련 본문이 혼돈으로부터의 창조 모티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홍 교수는 성서신학자임에도 조직신학자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홀로 세상을 만드시고, 세상을 만들 때 어떤 도움이나 재료도 필요하지 않았고, 말씀으로 모든 걸 창조할 능력이 있음을 믿는 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는 “무로부터의 창조는 논리적 철학적 사유의 산물인 반면, 혼돈을 극복한 창조는 실존적 산물”이라며 “둘은 창조에 대한 서로 다른 종류의 생각으로 서로 보완하고 양립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창훈 서울신대 교수는 ‘존 웨슬리의 자연과학 이해와 창조신학’을 발표했다. 감리교 성결교 순복음 신학의 출발점인 존 웨슬리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당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교수 신분으로 자연과학을 익히며 뉴턴의 물리학을 주석에 이용하고, 원초적 의술이란 책을 저술해 평생 23쇄를 찍는 베스트셀러의 저자였던 점을 지적했다. 자연과학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과학 그 자체가 완결된 것은 아니라는 인식 아래 겸손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특히 웨슬리가 광신에 대한 경계와 편협한 믿음에 대한 경고, 관용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천문학전공 교수는 과학의 관점으로 본 진화적 창조를 설명하며 이른바 유신진화론이 갖는 네이밍의 한계를 지적하고 당대의 과학적 발견을 뛰어넘어 창조를 이룬 더 위대한 하나님을 말했다. 우 교수는 각 시대가 각자 소견대로 한계 안에서 만들어낸 ‘만들어진 신’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고대 히브리인의 우주관에 갇혀 과학이 엄밀히 밝힌 내용을 부정하고 이단 심판관처럼 방어적 자세를 취하는 태도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21세기 과학의 도전은 과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우주와 생물의 역사를, 즉 자세히 밝혀진 창조주의 창조역사를,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신학의 틀에 어떻게 수용할지, 그 점에서 도전이 됩니다. 이것은 결국 비판적으로 과학을 수용하고, 그리고 폭넓게 창조신학을 하면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입니다.”
앞서 지난 17일에는 기독교 교양인을 위한 창조신학 첫번째 콘퍼런스가 열려 손호현 연세대 교수가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를, 김학철 연세대 교수가 ‘기독교교양학의 전망에서 창조논란 이해하기’를, 정대경 연세대 교수가 ‘과학신학의 창조이해’를 각각 발표했다. 이들은 교단의 창조론과 다른 내용이 담긴 책을 2018년에 저술했다는 이유로 징계위에 회부된 박영식 서울신대 교수의 ‘창조의 신학’ 책을 콘퍼런스 참여자들과 함께 나눴다.
글‧사진=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