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풀니스’의 저자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아프리카 주민의 삶은 이전보다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도시를 벗어나서는 여전히 절대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다수다. 무엇보다 생명의 근원인 깨끗한 물도 얻지 못한 채 살아간다.
30일(현지시간) 현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은 작은 개울가에서 식수를 얻고 있었다. 물은 깨끗하지 못했다. 뿌연 색깔의 흙탕물로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마시며 살아간다고 했다. 바로 옆 개울에서는 주민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마신다”고 했다.
여인이나 여아들은 20ℓ짜리 플라스틱 물통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거나 손에 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이 마을 주민 500여명은 이렇게 깨끗하지 못한 물을 떠다마시며 팍팍한 삶을 이어간다.
더러운 물은 전염병을 만들고 사람들은 병에 걸린 아픈 가족들로 불화나 다툼이 끊이지 않는다. 물을 뜨러 나간 아내와 딸들은 때때로 몹쓸 남성들의 공격을 받기도 한다. 더러운 물 때문에 아이들은 병이 생겨 학교에 빠지는 일도 부지기수다. 건기가 오면 그마저 개울도 말라 버려 물 구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1997년 당시 29세 여성 젠은 이런 상황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깨끗한 물을 원하는 아키부이 마을 주민과 함께 모임을 구성했다. 아키부이 마을은 젠이 사는 곳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깨끗한 물을 얻어서 주변 사람들을 도우려는 취지였다. 젠과 주민들은 정부와 NGO 등에 호소했다.
그렇게 해서 젠과 주민 모임은 지난 2016년 케냐 월드비전과 연결됐고 이후 식수위원회를 구성해 식수 프로젝트를 가동, 2020년 시설을 완공했다. 식수 프로젝트를 통해 들어선 물탱크의 물은 140개 가정에 공급됐고 이제는 주민 1만여명이 혜택을 누리고 있다. 현재 7개 학교에도 식수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식수위원회는 마을 대표들의 모임으로 식수 시설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 개선점 등 의견을 월드비전에 전달한다.
마치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이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가에 왔다가 예수를 만나 영원한 생명의 물을 얻고 동네 사람들에게 전한 것처럼 젠과 주민들은 이제 멈추지 않는 생명의 물로 풍성함을 누리고 있다.
이날 식수탱크 앞에서 만난 젠(56)은 10년 전 목사 안수를 받고 현재 지역 성공회 교회 목회자로도 사역하고 있다고 했다. 젠 목사는 “깨끗한 물이 공급되면서 전염병이 사라졌고 가정 내 다툼이 사라지고 행복과 평화가 찾아왔다. 이제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간다. 여자아이들은 더 이상 1시간 넘게 걸어서 물을 길러 가지 않는다. 물은 종일 24시간 공급된다. 깨끗한 물이 우리를 살렸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엔 박영숙 순복음삼마교회 목사와 교회 성도, 한국 월드비전 관계자 등 8명도 젠을 비롯해 식수위원회 주민을 만나 깨끗한 물이 가져온 기적적 변화 이야기를 들었다. 이곳은 10만ℓ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대형 물탱크를 비롯해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만들어 95m 깊이로 파 내려간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모터 장치, 그리고 각 지역으로 보내는 2차 물탱크 등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식수위원회에 참석한 정부 관계자는 “식수 사업으로 깨끗한 물이 가정과 학교에 전달되면서 아이들은 학업 성취도가 상승했다”며 “식수 사업 이전에 만연됐던 가정불화 등도 이젠 사라졌다”고 말했다.
식수위원회는 이제 마을에 나무 심기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케냐 월드비전 앙구라이 사업장 조셉 디렉터는 “월드비전을 통해 식수사업은 더 확장될 예정이다. 한국인들의 관심과 후원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박영숙 목사는 “용감한 여인 한 명과 월드비전을 통해 식수 프로젝트가 진행돼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고 평안을 가져왔다”며 “시스템을 갖춘 건강한 NGO를 통한 사업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고 관리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NGO 활동을 신뢰하고 후원할 이유”라고 말했다.
아키부이(케냐)=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