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기독교복음선교회(JMS) 교주 정명석의 항소심 재판부가 사설 감정 기관 1곳에 피해자가 제출한 녹음 파일 감정을 허가한 것을 두고 피해자 측이 거세게 반발했다. 1심에서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통해 검증을 받았는데도 사설 감정 기관의 감정을 추가로 허락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피해자의 2차 가해를 가중하는 꼴이라는 취지다.
30일 법조계와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이날 대전고법 형사3부(김병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명석의 여신도 준강간 등 혐의 사건 항소심 속행 공판에서 재판부는 정명석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성폭행 당시 상황이 담긴 녹음파일의 등사를 허가했다. 또 사설 감정기관 1곳에 피해자가 제출한 녹음파일의 감정도 허가했다.
재판부의 이 같은 결정에 피해자 측은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피해자들을 도와 온 김도형 단국대 교수는 “정명석 측 변호인은 정명석의 목소리를 특정하기 위해 교단 관계자들에게 녹음파일을 들려줬을 뿐이라고 주장하는데 제삼자에게 녹음파일을 들려준 것부터가 유출이 아니고 뭔가”라며 “이번 재판을 통해 오히려 녹음파일이 유출됐음이 명백히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날 재판에서 정명석 측 변호인은 “(JMS 내) 목회자들과 협조 차원에서 변호인과 같이 들었고, 복사해준 것이 아니다”며 “그걸 나쁜 의도를 갖고 유출했다고 한 듯한데, 양심을 걸고 유출하지 않았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 측은 “녹음파일을 JMS 신도들에게 들려주고 다닌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다른 신도들에게 녹음파일을 들려줬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부적절한 행태다”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 당장 유출이 안 되더라도 언젠가 어떻게 사용될지 모른다”며 “등사한 모든 파일을 회수했으면 한다”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검찰 측은 또 녹음파일의 등사와 함께 사적 기관을 통한 검증을 허락해달라는 정명석 측의 요청에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우려해 강력히 반대 의사를 냈다. 하지만, 재판부는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이를 허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검찰과 피해자 측은 사적 기관의 감정은 공정성에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원칙적으로 1심에서 이미 공신력 있는 기관의 감정을 받은 만큼 추가 감정이 필요 없다고 본다.
피해자 측이 주장한 2차 가해 정황 역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날 재판 소식이 전해진 후 일부 매체에서는 녹음파일에 제삼자의 목소리가 다수 발견됐다거나, 녹음이 편집, 조작됐다는 식의 확인되지 않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했다.
김 교수는 “이처럼 공신력 없는 사적 기관의 감정 결과를 들먹이며 녹음파일이 조작됐다거나 편집된 증거가 나왔다는 식의 근거 없는 주장이 나오는 것부터 이미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이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재판부가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피해자를 사람이 아닌 증거물로만 보기에 그런 것 같다”며 “겉으로는 공정성을 이야기하지만, 피해자가 입을 피해는 생각하지 않는, 2차 가해를 가중하는 꼴이다”고 비판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