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앉은 예수님이 열 두 제자 앞에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얘기한다. 가시면류관을 쓴 채 피 흘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군중들이 “십자가에 매 달으라”며 소리친다. 크리스천들에게 익숙한 장면들을 생동감 있게 구현해낸 영화의 일부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 출연자들의 대사가 ‘들리는’ 대신 ‘보인다’는 것이다.
다음 달 20일 미국 개봉을 앞둔 영화 ‘지저스(Jesus)’(감독 조셉 조슬린)는 세계 최초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수어 연기로 담아낸 장편영화다. 청각 장애인 사역 단체인 ‘데프 미션(Deaf mission)’이 미국 수어(ASL)로 영화를 제작한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주연을 맡은 청각 장애인 배우 기드온 펄을 비롯해 모든 배우들이 수어로 연기를 펼친다. 예고편을 통해 공개된 장면들은 일반적으로 ‘영화’하면 떠올리는 음성 대사 없이 수어와 자막, 사운드 트랙으로 채워져 있다.
웅장하게 묘사한 성경 속 배경과 상황, 기존의 기독교 영화들 못지않은 배우들의 열연이 수어와 어우러지며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크리스천인 배우 펄은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오롯이 표현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연기에 임했다”고 밝혔다.
작품의 출발점은 1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슬린 감독은 “2006년에 처음 데프 미션의 회원이 됐을 때 당시에는 수어 영화 제작에 필요한 기술, 제작비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아 바로 제작에 착수할 순 없었지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면서, 예수님에 관한 많은 영화들을 볼 때마다 ‘만약 이 영화들이 수어로 돼 있다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늘 품어왔다”고 회상했다.
이 작품의 영화관 개봉은 제작 과정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성과이기도 하다. 조슬린 감독은 “이번 작품이 교회나 지역의 사회복지 센터에서 상영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있었지만 영화관에서 개봉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청각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환경에서 선교 영화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자 비기독교인 청각 장애인들을 초대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라고 덧붙였다.
영화 ‘지저스’는 유대에서 로마의 통치 아래 긴장이 고조되는 시대적 상황 속 예수님이 보여 준 기적과 그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 종교 지도자들을 향한 교훈 등 성경의 주요 장면들이 조명된다.
조슬린 감독은 “예수님의 삶 가운데 어떤 측면을 집중해 표현할 지 많은 고민을 했다”며 “관객들이 죄에 대한 용서와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 공생애의 핵심이었음을 작품을 통해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