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3일 발표한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지원 방안’은 금융 지원에 방점을 뒀다. 보조금 지급을 통한 직접 지원보다 세제·금융 지원을 통한 비용 절감으로 투자를 촉진하는 게 핵심이다.
먼저 정부는 산업은행 출자를 통해 17조원의 저리 대출 프로그램을 신설하기로 했다. 반도체 투자 자금을 시중보다 저렴한 금리로 대출받아 투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지원한다. 다만 구체적 출자 규모와 방식은 협의 중이다.
1조1000억원의 반도체 생태계 펀드도 조성한다. 정부는 3000억원 규모로 펀드를 조성 중이었으나 소재·부품·장비 기업 지원 강화를 위해 규모를 3배 이상 확대하기로 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반도체 생태계 펀드는 모두 소재·부품·장비 기업 지원에 투입된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메가클러스터는 도로·용수·전력 등 인프라 지원으로 건설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개발계획 수립, 토지 보상 등을 차례로 진행하면 착공까지 7년 이상의 기간이 걸린다. 정부는 계획 수립과 보상을 동시에 진행할 수 있게 해 착공까지의 기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계획이다. 2026년 말 부지 조성 공사에 착수해 2028년 말 공장 건설을 시작한다. 2030년 말 공장을 가동하는 게 목표다. 반도체 메가클러스터와 가까운 국도 45호선은 8차선으로 확장하며 이설한다. 용수와 전력 공급은 사전 절차 간소화로 해결한다.
정부는 올해 말 일몰되는 반도체 통합투자세액공제와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연장도 추진한다. 반도체 기업은 사업용 설비와 시설 등 투자금액에 대해 중소기업은 25~35%, 중견·대기업은 15~25%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최대 50%까지 세액공제 받을 수 있는 R&D 세액공제 항목에는 반도체 설계용 소프트웨어 구입비 등을 추가한다.
5조원 이상의 재정 지원은 R&D와 인력 양성에 집중한다. 지난 3년간 3조원 수준으로 이뤄지던 지원을 향후 3년간 5조원까지 늘린다. 첨단 패키징, 미니팹 구축 등 R&D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도 마무리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한다.
다만 정부는 이날도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보조금 지원에는 선을 그었다. 세제지원 혜택이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투자를 장려할 수 있는 유인책에 집중하겠다는 설명이다. 최 부총리는 “제조 역량을 갖춘 나라에서는 세제지원이 보조금 성격”이라며 “이번 방안을 준비하며 업계 의견을 청취한 결과 인프라 지원 요구가 더 강했다”고 말했다.
예상보다 큰 지원 규모에 ‘졸속 정책’ 우려가 나온다. 미국, 일본 등의 보조금 지급을 의식해 급하게 지원 규모를 확대하면서 구체적 방안이 빠진 정책을 내놨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다음 달 중 반도체 생태계 지원 방안의 구체적 내용을, 8월 중 시스템반도체 성장전략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