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중인 사건이 아닌 별개의 사건으로 구금된 피고인에게도 국선변호인의 조력이 보장돼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국선변호인 선정 사유인 ‘구속’을 해당 사건으로 한정해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상환 대법관)는 23일 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파기하면서 이같이 판단했다.
A씨는 2020년 9월 건조물침입죄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구속된 상태에서 같은 해 12월 별건 상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1심에서 ‘빈곤 기타 사유’를 이유로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심에서도 국선변호인 없이 혼자 출석해 재판을 받았고, 징역 3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A씨는 구속 상태임에도 국선변호인이 선정되지 않은 채 1심과 2심 재판이 진행됐다며 재판 과정이 위법하다고 상고했다.
형사소송법 제33조는 피고인이 구속된 때 법원이 직권으로 변호인을 선정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기존 대법원 판례는 별건으로 구금된 피고인은 필요적 국선변호 사건에서 제외해 왔다. 앞서 대법원은 2009년 2월 형사소송법 33조의 ‘피고인이 구속된 때’는 “피고인이 해당 형사사건에서 구속돼 재판받는 경우를 의미하고 피고인이 별건으로 구속돼 있거나 다른 형사사건에서 유죄로 확정돼 수형 중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은 다수의견(10명)으로 “피고인이 구속된 때는 피고인이 별건으로 구속됐거나 다른 형사사건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돼 구금 상태에 있는 경우도 포괄한다”며 기존 판례를 변경했다. 이들은 “구금 상태로 제약된 방어력의 보충을 위해 국선변호인의 선정이 요청되는 정도는 구금 상태의 이유나 상황에 관계없이 모두 동일하다”며 “형사절차에서 침해될 수 있는 국민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한 이 사건 조항의 입법 목적 또한 충실하게 구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동원·노태악·신숙희 대법관은 원심판결을 파기해야 한다는 다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종전 판례를 유지해야 한다고 별개 의견을 냈다. 이들은 “이 사건 조항의 피고인이 구속된 때는 피고인이 해당 형사사건에서 구속돼 재판을 받는 경우를 의미한다”며 “기존 판례 법리는 여전히 타당해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필요적 국선변호인 선정 사유인 ‘구속’의 의미를 종전에 비해 넓게 해석한 것”이라며 “구금으로 방어권이 취약한 상태에 놓인 피고인이 변호인 조력 등으로 헌법상 기본권을 보다 충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김용헌 기자 y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