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모녀 전세사기’ 사건 주범 김모(59)씨가 법정에서 “임대사업을 잘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장학재단이라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며 고의적인 사기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김씨가) 건실한 사업자처럼 주장하지만 본질은 정보가 부족한 서민들 돈을 편취한 사기범”이라며 징역 15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김씨는 2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 심리로 열린 사기 혐의 공판에서 “임차보증금 반환이 끊기지 않도록 소유 아파트와 월세방을 매각했다”고 주장했다. 보증금 미반환이 고의가 아니었다는 취지다. 이어 “새 임차인들을 (시세보다) 약 2000만~4000만원 낮춰 구한 뒤 개인자금을 더해 임차금을 반환하기도 했다”며 “이렇게 엄청난, 무서운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부는 ‘세 모녀’ 김씨와 두 딸, 분양대행업자 관계자 4명의 결심 공판을 열었다. 김씨 측은 보증금 미반환은 부동산 시장 침체, 종부세·재산세 부과로 인한 세금 증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블랙리스트 등재 등 외부적 요인으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딸들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감정이 복받치는 듯 울먹이기도 했다. 김씨는 최후 진술에서 “임대사업을 성공시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이들 이름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씨와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분양대행업자 측도 “과실이 있었을 뿐 사기 고의성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은 “피고인들은 범행을 반성하기는커녕 재판 과정에서도 부동산 시장 변화를 탓하면서 형사책임 회피에 급급했다”며 “120명에 달하는 진술 증거를 무차별적으로 부동의하고, 조금이라도 불리한 증거도 부동의하며 재판을 지연시켜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서민들이 모은 전 재산을 무차별 편취해 270명에 달하는 피해자와 600억원에 달하는 피해액을 유발했다”며 김씨에 대해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김씨 범행에 명의를 빌려준 혐의를 받는 두 딸에게는 부동산실명법 위반으로 각각 3년을 구형했다.
김씨 딸 박모씨는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모르고 무지함으로 사건이 발생했다”며 “다시 사회에 나가 성실히 일하며 또래 친구들처럼 지낼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고 말했다.
앞서 김씨는 지난해 7월 세입자 85명에게 183억원 상당의 보증금을 편취한 혐의로 먼저 기소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은 추가로 확인된 피해자 270명에게 612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검찰이 추가 기소한 사건이다. 총 피해 규모는 임차인 355명, 전세보증금 795억원이다.
이날 재판부는 임차인들에게 매매가보다 전세가를 높게 받는 등 김씨와 사기를 공모한 혐의로 기소된 분양대행업자 측에 “수십 개의 차명계좌 관련 금융실명법 위반은 변호인 의견도 없고 반성도 안 하는 거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분양대행업자 측 변호인은 이날 1시간에 달하는 PPT 최후변론을 통해 사기 혐의를 부인했지만 차명계좌 관련 언급은 하지 않았다.
분양대행업자 측 변호인은 최후변론에서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일하다는 점 등 (계약 시) 임차인들에게 중요 사항을 모두 설명했다”며 “임대차 계약 체결 과정에서 불법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8년이나 2019년에는 부동산 호황기였고 후속 임차인들을 구해서 보증금 반환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 통념이었다”며 “민사 영역에 불과한 것 같다”고 했다.
분양대행업체 대표 송모씨도 최후진술에서 “김씨에게 보증금 반환 의지가 없었다면 절대 (김씨에게) 분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저희가 ‘무자본 갭투자’를 기획해서 한 것도 아니고 매매가와 전세가가 같다는 점과 임대인이 변경된다는 사실을 (임차인에게) 상세히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송씨에게도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김용헌 기자 y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