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불륜을 입증할 목적으로 상대 몰래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해 불법으로 녹음한 파일은 가사 재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재판장 김선수)는 A씨가 상간녀 B씨를 상대로 낸 위자료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지난달 16일 확정했다.
A씨는 2011년 의사인 남편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병원에서 만난 B씨와 여러 차례 데이트를 하는 등 바람을 피웠다. A씨는 2019년 이 사실을 알게 됐다.
A씨에게도 불륜 상대가 있었는데 남편이 A씨 외도를 알게 되면서 부부는 이듬해 협의 이혼했다.
이후 A씨는 2022년 상간녀 B씨를 상대로 33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는 이 재판에서 남편 휴대전화에 몰래 설치해 둔 ‘스파이 앱’을 통해 확보한 남편과 B씨의 통화 녹음 파일을 제출했다. 스파이 앱은 휴대전화 음성 녹음을 통해 사용자의 통화 내용을 도·감청할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말한다.
1심과 2심은 녹음 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하고 B씨가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민사 소송절차 및 이를 준용하는 가사 소송절차에서는 형사소송법의 법리에 따른 위법수집증거의 증거능력 배제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며 “상대방 동의 없이 증거를 취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1·2심을 뒤집고 녹음 파일을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제3자가 전기통신의 당사자인 송신인과 수신인의 동의를 받지 않고 전화 통화 내용을 녹음한 행위는 전기통신의 감청에 해당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 되고, 불법감청에 의해 녹음된 전화 통화는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불법감청에 의해 얻거나 기록한 통신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 절차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다만 대법원은 나머지 증거로도 B씨의 부정행위가 인정된다고 보고 위자료 1000만원 지급을 명령한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