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에 유통되는 프랑스산 화이트 와인 병에 필로폰 원료 액체를 담아 국내 반입해 호텔 방에서 마약을 제조한 중국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중국산 ‘밀크티 스틱’에 향정신성의약품 ‘러미라’(덱스트로메트로판)를 넣고, 중국 유명 술에는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의약품 ’프레가발린’을 밀수한 30대 한국인도 검거됐다. 가루 형태로 유통되던 마약 밀수가 수사기관의 눈을 피하고자 점점 진화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와인병 속 액체를 재가공해 18만6000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필로폰 5.6㎏을 시중에 유통하려고 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중 마약 제조 등)를 받는 20대 중국인 A씨와 향정신성의약품 ‘러미라’와 과다 복용 시 환각을 일으키는 전문의약품 ‘프레가발린’을 국내에 몰래 들인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중 향정신성의약품 수입 등)를 받는 밀수입 업자 B씨를 최근 구속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홍콩에서 지난달 3일 입국한 A씨는 해외 총책의 지시에 따라 지난달 3일부터 16일까지 인천 한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그는 화이트 와인 6병을 건네받고 병에 담겨있던 액체형태의 필로폰 원료 물질을 가공했다. A씨는 지난달 23일 필로폰 2㎏을 판매하려다가 첩보를 입수해 잠복 중이던 경찰에게 검거됐다. 그의 호텔에 찾아간 경찰은 필로폰 3.6㎏과 원료 액체 300㎖를 추가로 찾아내 압수했다.
현장에서 발견된 화이트 와인병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프랑스산 와인으로 외관상 마약과 관련된 물질을 구분하기 매우 어려웠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 지역 일대 경찰에서 이런 규모의 마약 제조 현장이 적발된 건 5년여 만으로 이례적인 경우”라며 “액체 형태로도 마약류가 유통될 수 있다는 정보를 세관 등 관계기관과도 공유했다”고 말했다.
A씨와 같이 국내에서 직접 필로폰을 제조하는 경우는 지난해 전체 마약사범 중 0.33%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드문 일이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 1만7817명 중 제조 마약사범은 58명뿐이다. 경찰 관계자는 “필로폰 제조는 공정이 까다롭고 발각될 위험이 커서 통상 완제품 형태로 밀반입돼 유통된다”면서도 “과거 제조과정보다 훨씬 쉬운 방식으로 마약 원료 추출이 가능했던 것이 이번 사건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밀크티 스틱으로 위장한 ‘러미라’와 중국 술로 위장한 ‘프레가발린’을 밀수한 B씨는 중국 심양에 있는 공범 D씨와 범행을 공모했다. D씨가 중국 심양 소재 공장에서 제조돼 중국에 유통되는 분말 밀크티 스틱 안에 러미라를 섞어 재포장하고, 프레가발린을 중국 술에 담아 국내로 보내도록 했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B씨는 러미라와 프레가발린이 유흥가에서 유행이라는 소문을 듣게 된 후 이같은 범행을 계획했다. 그는 “러미라와 프레가발린이 지속적인 환각 상태와 흥분상태를 유지하면서도 마약 관련 검사에 검출되지 않는다”고 홍보하면서 강남과 부산 일대에 유통하려고 했다. 밀크틱 스틱 1포 당 15만원, 프레가발린 50㎖당 14만원에 판매하려고 했다. 이렇게 따지면 러미라 1억5000만원(1000포), 프레가발린 1억2760만원(45.6ℓ) 어치를 국내에 유통하려고 한 셈이다.
경찰은 A씨에게 필로폰 원료 물질이 든 와인병 6개를 전달한 혐의를 받는 20대 C씨와 B씨에게 건넨 러미라와 프레가발린을 제조한 혐의를 받는 D씨는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해 추적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제공조수사를 실시해 검거되지 않은 범죄자들의 신병을 조속히 확보해 사법처리될 수 있게 하겠다”며 “제조 사범뿐만 아니라 단순 구매 마약사범에 대한 연중 상시단속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