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산(産) 전기차·철강·배터리와 레거시(구형) 반도체, 주요 광물 등 핵심 전략 산업 부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중국의 첨단산업 육성과 저가 제품 과잉생산에 대해 ‘불공정 무역 관행에 대한 보복’을 규정한 통상무역법 301조를 적용, 대중 무역 전쟁을 공식화한 것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대중 통상 압박을 최대치로 늘리면서 미·중 갈등이 재차 심화할 우려도 제기된다.
백악관은 14일(현지시간) “기술 이전, 지적 재산권, 혁신과 관련한 중국의 불공정 무역 관행은 미국 기업과 근로자를 위협하고 있고, 인위적인 저가 수출품으로 세계 시장을 넘쳐나게 하고 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에 따라 중국산 수입품 180억 달러에 대한 관세를 인상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특히 초강력 관세 대상을 전기차·철강뿐만 아니라 구형 반도체, 태양광 전지, 주요 광물, 크레인, 의료 제품 등 산업 분야로까지 확장했다. 구체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예고된 대로 기존(25%)의 4배인 100%로 인상한다. 자동차·가전 등 전 산업 분야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구형 반도체에 대한 관세도 내년까지 50%(현행 25%)로 높인다. 중국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태양광 전지 관세는 올해 안에 25%에서 50%로 인상된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배터리 부품, 천연흑연·영구자석 등 특정 핵심 광물에 대해서도 25% 관세가 부과된다. 백악관은 자국 항만 시설에 대한 감시 우려가 제기된 중국산 크레인에 대해서도 최고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첨단 전략 산업에 대한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을 공식화한 것이다. 중국을 저지하고 기술격차를 벌리기 위해 무역 장벽을 강화하는 ‘미국 우선 보호주의’를 노골화했다는 평가다. 특히 범용 반도체에 대한 관세 인상을 통해 기존 첨단 반도체 중심의 규제 범위를 확대한 것도 눈에 띈다. 백악관은 범용 반도체 등에 대한 중국 조치가 미국 기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블루칼라 유권자 표심을 노린 것으로 해석했다. 실제 백악관은 대중국 수입 물량이 적은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도 현행 7.5%에서 25%로 대폭 인상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등에 대한 피해를 해결하려는 것”이라며 핵심 경합주 노동자를 겨냥한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백악관도 “중국의 강제 기술 이전과 지적 재산 절도는 미국의 기술, 인프라, 에너지, 의료에 필요한 핵심 투입물에 대한 전 세계 생산의 70~90%를 통제하는 데 기여했고, 경제 안보에 용납할 수 없는 위험을 초래했다”며 이번 조치가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악관의 이번 조치는 핵심 전략 분야에 대한 타깃형 관세를 통해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꾀하려는 목적도 담겨 있다. 고위 당국자는 “이전 행정부의 대중 무역 협정은 약속대로 미국 수출을 늘리거나 제조업을 부양하지 못했다”며 “우리는 불공정 무역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국가의 모든 수입품에 가격을 인상하는 무차별적인 10% 관세를 적용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우리는 전 세계 파트너들과 중국의 불공정 관행에 대한 공동의 우려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대중국 통상 압박에 대한 연합전선 구축도 시사했다. 고위 당국자는 “대중국 관세 인상에 전 세계 동맹의 참여를 끌어내겠다”며 일부 국가에서 비슷한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경제 참모인 브라이언 디스 전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최근 “우리는 광범위한 국제 연합체를 구성해 과잉 생산이 발생하는 중국 산업에 관세를 함께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