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댓글을 통해 군대 상관의 비위를 폭로했다가 기소된 군무원에게 “‘공익을 위한 사실 적시’라면 군형법상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형법상 명예훼손의 위법성 조각 사유인 공익성과 진실성을 군형법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군형법상 상관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군무원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는 “군형법상 상관명예훼손죄(사실적시)를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으로 유추해 적용할 수 있다고 본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소속 A씨는 2022년 3월 ‘안장 마친 영국군 유해, 감식단장이 다른 국적 가능성 묵살’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상관을 비판하는 내용의 댓글을 달아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7년 감식단에서 발굴한 6·25 전쟁 전사자 유해 3구가 ‘영국군’으로 결론지어졌는데, 그 중 1구가 푸에르토리코군일 수 있다는 실무진 보고가 무시됐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A씨는 기사 댓글란에 “제보자로 추정되는 사람은 성희롱, 갑질, 인사 비리 등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며 “업무 자료를 악의적으로 왜곡해 무단 제보해 감식단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고 적었다. 이후 군 검사는 A씨에게 상관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1심을 맡은 군사법원은 A씨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댓글을 게시한 행위는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어 “전체 취지상 중요 부분이 사실과 일치하고, 유해발굴 사업은 보훈사업으로서 공적 관심 사안이라고 할 것이므로 A씨 댓글은 공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형법 제310조는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예외를 두고 있다. 이와 달리 군형법에선 이러한 ‘위법성 조각 사유’가 규정돼 있지 않다.
대법원도 군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원은 “입법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규율 공백이 있는 사안에 대해 법규범의 체계, 입법 의도 등에 비춰 정당하다고 평가되는 한도 내에서 유사한 사안에 관한 법규범을 적용할 수 있다”며 “형법 310조는 군형법상 상관명예훼손죄에 유추 적용된다”고 밝혔다.
또 “문제 되는 행위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하는지 심사할 때 상관명예훼손죄가 보호하고자 하는 군의 통수 체계와 위계질서에 대한 침해 위험 등을 추가로 고려하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