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수색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근거해 진행된다. 수사기관은 은밀하고 신속하게 압수수색을 집행한다. 당사자는 기습적인 압수수색으로 당황하고 위축된다. 형사소송법은 당사자가 영장을 제시받는 단계부터 압수물을 돌려받는 단계까지 당사자의 권리를 세세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는 자신의 권리를 잘 알지 못한다. 이 글은 증거를 인멸하거나 압수수색을 피하는 방법에 관한 글이 아니다. 법에 규정된 당사자의 권리를 알려줘 수사기관과 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제대로 된 수사와 방어를 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다.
의사가 아닌 무자격자에게 대리 수술을 시키거나 적법한 처방전 없이 환자들에게 프로포폴과 같은 마약류를 제공한 사건 등 병원과 관련된 사건·사고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병원에 대한 압수수색 또한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수사기관은 범죄 혐의와 관련된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 병원 책임자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하고 진행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병원 책임자가 출근해 있는 시간대를 선택해 압수수색을 집행합니다. 원칙적으로 병원장을 책임자로 볼 수 있지만, 병원장이 없다면 부원장이나 업무를 대신하는 사람이 책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원장이 없어도 압수수색이 진행될 수 있는 것이지요.
자신이 병원 책임자라면 차분하게 영장을 보고 범죄사실, 압수수색 장소, 물건 등을 꼼꼼하게 확인한 후 영장의 범위 내에서 압수수색이 진행되는지 하나씩 체크하면 됩니다. 특히 범죄사실과 관련된 압수수색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령 범죄사실에 프로포폴을 처방전 없이 투약한 혐의라고 적혀있다면, 프로포폴이 아닌 다른 물건을 수색하거나 압수하는 지 잘 확인해야 합니다.
그런데 병원은 일반적인 압수수색과 달리 신경 써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압수수색의 예외에 해당하는 물건 등이 있는지 주의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병원 등은 업무상 필요에 의해 보관하고 있던 다른 사람의 비밀과 관련된 물건의 압수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압수하는 물건 중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위탁을 받아 보관하고 있던 비밀과 관련된 물건이 섞여 들어가는지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합니다.
물론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다면, 수사기관은 설령 그것이 다른 사람의 비밀과 관련된 내용이라 할지라도 압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익상 필요’라는 기준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중대성’이라는 기준도 애매한 측면이 있습니다. 특히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압수수색 현장에서 ‘중대성’, ‘필요성’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병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업무상 위탁을 받아 보관하고 있던 다른 사람의 비밀과 관련된 것’은 압수를 거부할 수 있기 때문에, 압수물의 대상이 되는 물건을 한번 더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와 유사하게 압수를 거부할 수 있는 경우는 변호사의 ‘변호인의 비밀 유지’도 있습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는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신뢰관계에 기반하므로, 변호사는 이를 타인에게 공개할 수 없습니다. 이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종교인의 경우 ‘신자의 고백 내용’도 압수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이 신자로부터 듣게 되는 고백 내용 역시 개인의 신앙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종교인은 이러한 고백 내용을 비밀로 유지해야 합니다.
[허윤 변호사는?] 법무법인 LKB & Patners 형사대응팀, 디지털포렌식팀 소속. 국회, 검찰청, 선거관리위원회, 정부 부처, 교육청, 기업 본사 등 주요 시설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검사, 대한변호사협회 수석대변인, 서울중앙지방법원 연계 조기조정위원, 대법원 국선변호인 등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