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먼저 떠나보낸 빈자리, 새로운 가족이 채웠다

입력 2024-05-08 14:50 수정 2024-05-08 14:51
심장이식인 김지은씨가 최근 부산 사상구 인근에서 만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양이순씨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2017년 뇌사자로부터 심장을 이식받은 김지은(35)씨는 딸 홍라율(4)양과 어버이날을 맞아 특별한 만남을 가졌다. 두 모녀는 최근 부산 사상구 인근에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한필수(84)씨와 양이순(78)씨를 만났다. 김씨와 홍양은 미리 준비한 빨간 카네이션을 노부부의 가슴에 달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씨는 심장병으로 10년 넘게 투병을 이어오던 중 기적처럼 한 뇌사자의 심장을 이식받아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심장 이식인으로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출산에 성공했다. 오는 이달 말에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심장이식인은 이식 후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가 소아 기형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임신 기간에는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심장이식인의 출산이 기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김씨는 “기증인 덕분에 저뿐 아니라 라율이와 둘째 튼튼이까지 세 명의 심장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며 “두 번째 삶을 주신 기증인과 그 가족들을 항상 기억하며 두 아이를 열심히 키우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씨와 양씨 부부는 15년 전 뇌출혈로 인한 뇌사로 사랑하는 딸 고 한미영씨를 먼저 떠나 보냈다. 당시 딸은 5명에게 생명을 선물했다. 딸을 대신해 손녀를 키우고 있는 양씨는 “딸이 세상을 떠날 당시 라율이 또래였던 손녀가 이제 대학생이 됐다”면서 “자식을 앞세우고 괴롭고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딸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도 지은씨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고 했다.

국내에서는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비밀의유지)에 의해 직접적으로 장기를 주고받은 이들이 서로의 정보를 알 수 없다. 김씨가 비록 미영씨의 심장을 직접 이식받지는 않았지만, 양씨는 김씨를 보며 딸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도 건강하게 지낼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한씨는 “마치 딸이 달아준 것처럼 고맙고 애틋하다”며 “지은씨가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겠다”고 전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는 어버이날인 8일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인 ‘도너패밀리’ 200가정에 선물을 전달했다. 선물에는 감사와 존경의 뜻을 담은 카네이션과 장기이식인의 감사 편지 책자, 건강식품 등이 담겼다.

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