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기준금리 인하 시점의 재검토 가능성을 내비쳤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는 데다 지난달 이후 국제유가와 환율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한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전망치를 크게 웃돈 영향도 있다. 이 총재는 사실상 원점 재검토를 시사했다.
이 총재는 2일(현지시간)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 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기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달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회의와 관련해 “4월에 했던 논의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4월 통화정책방향(통방)이 5월 통방의 근거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미국 금리, 한국의 GDP 성장률, 지정학적 변동성이라는 3가지 전제가 바뀌었다고 강조했다.
우선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 전환 신호가 바뀐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목했다. 그는 “4월 통방 때 미국이 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라는 전제로 통화정책을 수립했다”면서 “그사이 미국의 경제 관련 지표가 좋게 나오면서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지금 견조한 경기와 물가 수준을 볼 때 세계는 미국의 금리 인하 시점이 뒤로 미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진단했다. 연준은 지난 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5.25~5.50%로 동결했다. 인플레이션 상황이 계속되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도 밀리게 됐다. 이미 미국과 한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최대 수준인데, 한국만 기준금리를 내리면 격차가 더 벌어지면서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깜짝 성장률’도 금리 인하에 변수로 떠올랐다. 한국의 1분기 GDP 성장률은 1.3%로 지난해 연간 성장률(1.4%)에 맞먹었다. 이 총재는 “생각보다 성장률이 굉장히 좋게 나왔다”며 “수출은 좋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내수가 예상보다 강건하게 나왔고 그 차이가 생각보다 컸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한 해에 성장한 걸 1분기에 했다고 볼 수 있다. GDP 성장률 상향 조정이 불가피한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한은은 지난 2월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1%로 유지했었다.
또한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이 추가로 반영될 전망이다. 이 총재는 “4월 통방 이후 중동 사태가 악화해 국제유가에 따른 변동성이 커졌다”면서 “지정학적 위기 변동성이 커지고 환율 변동성이 급격히 늘어나 앞으로 안정될지 불확실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