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떨며 전화 받은 산후도우미, 보이스피싱 직감한 경찰 아빠

입력 2024-05-03 15:15 수정 2024-05-03 22:14
국민일보 DB

‘보이스피싱’에 속을 뻔한 50대 산후도우미가 때마침 집에 있던 경찰관인 아기 아빠의 기지로 피해를 면한 일이 벌어졌다.

3일 강원 홍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일 오전 9시쯤 산후도우미로 일하던 A씨는 출근 첫 날 휴대폰 액정에 ‘아들’로 표시된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의 아들은 “사채를 썼다가 갚지 않아 감금당했다. 당장 2000만원이 있어야 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절대 전화를 끊어서는 안 된다”는 당부에 A씨는 때마침 집에 있던 아기 아빠의 휴대전화를 빌려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고는 “일이 생겨 가봐야 한다”며 급히 조퇴했다.

A씨가 전화를 빌렸던 아기 아빠는 홍천경찰서 경무과 소속 김석환(37)경사였다. 김 경사는 전날 당직 근무를 선 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이었다.

김 경사는 A씨가 손을 심하게 떨면서 통화한 점을 수상하게 생각했다. 이후 조퇴한 A씨에게 연락했으나 A씨는 계속 통화 중이었다. 보이스피싱을 직감한 김 경사는 통화기록에 남은 A씨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들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보이스피싱임이 분명하다고 알렸다.

이어 김 경사는 A씨가 남편과 만나기로 한 장소를 파악한 뒤 곧장 112에 신고했고, A씨는 피해를 면했다.

오후에 다시 출근한 A씨 휴대전화를 김 경사가 확인한 결과, 보이스피싱 조직은 휴대전화 뒷번호 8자리만 일치하면 같은 번호로 인식해 저장된 이름을 표시하는 스마트폰의 취약점을 이용해 A씨를 범행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수법에 A씨는 ‘아들’이라고 표시된 전화의 번호가 해외 번호임을 알지 못했다.

경찰은 해외에서 수신되는 전화는 차단되도록 A씨의 휴대전화 설정을 바꿔주고, 예방법을 알려주는 등 후속 조치를 했다.

김 경사는 “피해를 보지 않으셔서 천만다행”이라며 “보이스피싱 수법이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만큼 ‘설마 내가 당하겠어?’라는 생각을 버리고, 비슷한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면 항상 의심하고 경찰에 알려달라”고 당부했다.

최다희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